첨단산업, 수자원 확보 '절실'...지속가능한 물관리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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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에서는 막대한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물 공급 부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다량의 물을 소비하는 기업에는 안정적 생산관리를 위한 수자원 확보가 절실하다. 지속가능한 물관리를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한경ESG]- 러닝
유엔은 기후변화가 전 세계의 물 순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나아가 홍수·가뭄·산사태·해수면 상승 등을 초래해 지역사회와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최근 몇 년 동안 경험한 기록적인 폭염이나 한파만 봐도 먼 나라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은 인류에게 필수적인 자원이지만, 누구나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24년 유엔 세계 물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은 ‘매우 높은’ 수준의 물 스트레스에 직면했으며, 연간 담수 공급량의 80% 이상을 재사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환경 전망 2050 보고서’는 한국이 2050년 평가 대상 24개국 중 물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 스트레스란 특정 지역에서 이용 가능한 수자원에 비해 수요가 과도해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듯 물 공급이 부족한 반면, 물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특히 ‘목마른 산업’으로 불리는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에서는 막대한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레이팅스는 생산 규모 확장과 첨단 공정 기술 발전으로 인해 반도체 산업의 물 소비가 매년 5∼10% 증가하고 있으며, 전 세계 반도체 제조업체는 750만 명이 사는 홍콩의 물 소비량만큼 물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기술 전문 매체 이노베이션 오리진(Innovation Origins)은 인공지능(AI) 기술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가 서버 열을 식히는 냉각시스템 가동을 위해 하루 7200만 리터의 물을 소모한다고 전한 바 있다.
물 부족에 대한 위기감이 점점 커지면서, 다량의 물을 소비하는 기업에는 안정적 생산관리를 위한 수자원 확보가 관건이 됐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이 물 사용을 저감하고, 재이용 및 재활용하는 물 순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물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3월, 물관리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등 정부 및 공공기관이 대기업과 협력해 ‘워터 포지티브’ 협의체를 구성했다. 여기 속한 기업들은 자체 시설을 통한 폐수 재이용률을 높이는 것 외에도 AI 기반의 물 효율화 및 모니터링 IT 시스템을 도입해 용수 관리 주기를 단축하는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수자원 확보 노력을 기울였다.
디지털 기반 수처리 솔루션 도입은 불필요한 물 소비를 줄이고, 수자원 관리 효율을 높여 에너지 사용량 감소 효과를 가져온다. 필자가 근무하는 이콜랩(Ecolab)이 물 순환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2013년부터 10년간 총 500회에 걸쳐 다양한 산업 분야의 생산공정에 대한 평가를 실시한 결과, 기업의 효율적인 물관리가 물 소비량을 최대 44%, 에너지 사용량을 최대 22%, 온실가스배출량을 최대 12%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업의 운영 비용 절감과 더불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목표 달성에도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B사는 디지털 기반 수처리 솔루션의 도움을 얻어 냉각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했다. 그 결과 연간 2700만 리터 이상 물 소비량을 줄였으며, 냉각탑 부식률을 93% 감소시켜 운영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 재생수 사용량 증가, 농축 사이클 연장, 운영 인력 최적화 등 재무적으로 환산했을 때 연간 약 11만5000달러(약 1억7000만 원)의 가치를 창출했다.
지구에서 쓸 수 있는 수자원의 양은 한정돼 있다. 지구 전체 물의 97.5%는 염분이 있는 바닷물이며, 담수는 2.5%에 불과하다. 그마저 빙하와 만년설 등 접근이 어려운 물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수자원은 0.39%뿐이다. 물의 양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혁신적 기술과 솔루션을 통해 지속가능한 물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일 것이다.
류양권 한국이콜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