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수자원 확보 '절실'...지속가능한 물관리 해법은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에서는 막대한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물 공급 부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다량의 물을 소비하는 기업에는 안정적 생산관리를 위한 수자원 확보가 절실하다. 지속가능한 물관리를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한경ESG]- 러닝
매년 3월 22일은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물 부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유엔(UN)이 지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올해 세계 물의 날의 주제는 ‘빙하 보존(Glacier Preservation)’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빠르게 녹아내리는 빙하와 이로 인한 수자원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유엔은 기후변화가 전 세계의 물 순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나아가 홍수·가뭄·산사태·해수면 상승 등을 초래해 지역사회와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최근 몇 년 동안 경험한 기록적인 폭염이나 한파만 봐도 먼 나라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은 인류에게 필수적인 자원이지만, 누구나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24년 유엔 세계 물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은 ‘매우 높은’ 수준의 물 스트레스에 직면했으며, 연간 담수 공급량의 80% 이상을 재사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환경 전망 2050 보고서’는 한국이 2050년 평가 대상 24개국 중 물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 스트레스란 특정 지역에서 이용 가능한 수자원에 비해 수요가 과도해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듯 물 공급이 부족한 반면, 물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특히 ‘목마른 산업’으로 불리는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에서는 막대한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레이팅스는 생산 규모 확장과 첨단 공정 기술 발전으로 인해 반도체 산업의 물 소비가 매년 5∼10% 증가하고 있으며, 전 세계 반도체 제조업체는 750만 명이 사는 홍콩의 물 소비량만큼 물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기술 전문 매체 이노베이션 오리진(Innovation Origins)은 인공지능(AI) 기술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가 서버 열을 식히는 냉각시스템 가동을 위해 하루 7200만 리터의 물을 소모한다고 전한 바 있다.
기업, 지속가능한 물관리 기술 활용해야

물 부족에 대한 위기감이 점점 커지면서, 다량의 물을 소비하는 기업에는 안정적 생산관리를 위한 수자원 확보가 관건이 됐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이 물 사용을 저감하고, 재이용 및 재활용하는 물 순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물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3월, 물관리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등 정부 및 공공기관이 대기업과 협력해 ‘워터 포지티브’ 협의체를 구성했다. 여기 속한 기업들은 자체 시설을 통한 폐수 재이용률을 높이는 것 외에도 AI 기반의 물 효율화 및 모니터링 IT 시스템을 도입해 용수 관리 주기를 단축하는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수자원 확보 노력을 기울였다.

디지털 기반 수처리 솔루션 도입은 불필요한 물 소비를 줄이고, 수자원 관리 효율을 높여 에너지 사용량 감소 효과를 가져온다. 필자가 근무하는 이콜랩(Ecolab)이 물 순환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2013년부터 10년간 총 500회에 걸쳐 다양한 산업 분야의 생산공정에 대한 평가를 실시한 결과, 기업의 효율적인 물관리가 물 소비량을 최대 44%, 에너지 사용량을 최대 22%, 온실가스배출량을 최대 12%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업의 운영 비용 절감과 더불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목표 달성에도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이콜랩 류양권 대표이사
이콜랩의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지속가능한 물관리’ 사례를 보면 그 효과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글로벌 IT 기업 A사는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면서 지역 전반의 운영 비용과 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솔루션을 도입했다. 이 솔루션은 냉각시스템을 24시간 모니터링해 문제 발생을 사전에 감지하고, 수질을 자동으로 제어하면서 물 사용을 최적화했다. 결과적으로, 연간 2억2000리터의 물을 절약하고 물관리에 소모되는 비용을 연간 14만 달러(약 2억 원)를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B사는 디지털 기반 수처리 솔루션의 도움을 얻어 냉각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했다. 그 결과 연간 2700만 리터 이상 물 소비량을 줄였으며, 냉각탑 부식률을 93% 감소시켜 운영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 재생수 사용량 증가, 농축 사이클 연장, 운영 인력 최적화 등 재무적으로 환산했을 때 연간 약 11만5000달러(약 1억7000만 원)의 가치를 창출했다.

지구에서 쓸 수 있는 수자원의 양은 한정돼 있다. 지구 전체 물의 97.5%는 염분이 있는 바닷물이며, 담수는 2.5%에 불과하다. 그마저 빙하와 만년설 등 접근이 어려운 물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수자원은 0.39%뿐이다. 물의 양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혁신적 기술과 솔루션을 통해 지속가능한 물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일 것이다.

류양권 한국이콜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