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모호한 상법 개정안, 반드시 재의돼야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미국발 ‘관세폭탄’ 여파로 국제경제는 전쟁통이다. 갑작스러운 계엄선포 후폭풍도 진행 중이다. 경제에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는데 거대 야당이 통과시킨 상법 개정안은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현행 상법은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는 이사와 회사 간 이해충돌이 있는 행위를 금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개정안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 확대하고 있지만, 이사와 계약관계가 없는 주주와의 사이에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를 실제 상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개정안은 또 이사의 총주주 이익보호 의무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대한 공평대우 의무를 추가로 정하고 있다. 개정안이 ‘주주’ ‘총주주’ ‘전체 주주’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 용어들 간 개념적 차이가 명확지 않다. 특히 개정안은 이사 직무 수행 시 이익보호 대상으로 총주주만을 제시하고 있어 이사가 회사와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외면하고 직무를 수행해도 되는지 논란거리다.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라는 게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보호하라는 뜻으로 읽힌다면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생각이 다를 경우 이사가 양자의 이익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경영권 분쟁이 있는 회사에서 경영권을 가져오려는 주주와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주주가 있는 경우에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할 수 있는 묘안도 떠오르지 않는다. 공격자와 방어자 모두 주주인 만큼 이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은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에 전자주주총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자주주총회는 오프라인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줄일 수 있어 주주총회를 활성화하는 효과적인 방안임은 틀림없다.

우리나라에는 주주가 수십만 명을 넘는 상장회사가 여럿 있다. 그런데 이 많은 주주가 동시에 전자주주총회에 접속할 때 이를 감당할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개정안은 전자주주총회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능상 오류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에 관해 규정하지 않고 있다. 많은 주주가 접속 불안정 등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주총회 결의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회사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접속오류 등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전자주주총회 개최를 의무화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명확하지 않은 법률 규정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모호한 구석이 많은 개정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 개정안은 반드시 국회에서 재의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