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민주화 시위 주동자 보내달라"…100억 사기꾼 인도 미루는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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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5
국내 거주 특정인
지목해 송환 요구
한국 대상 피싱범
소굴 된 캄보디아
캄보디아인 범죄자는
국내에 적어 '불균형'

19일 경찰청에 따르면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한국에 체류 중인 캄보디아 국적의 반정부 인사 A씨를 송환해 달라고 요구하며 지난 2월 캄보디아에서 체포된 한국 국적의 강모씨(31)·안모씨(28) 부부를 인도하지 않고 있다. A씨는 한국에 거주하면서 캄보디아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며 유튜브를 통해 정부를 비판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한국 경찰청이 송환 요청한 강씨·안씨 부부는 캄보디아에서 불법 콜센터를 차리고 100억원 규모의 ‘로맨스스캠’ 사기 범죄를 저질렀다. 인터폴 적색수배 상태로 지난달 3일 검거됐다.
통상 경찰은 죄질과 피해 규모 등을 고려해 송환 요청자 명단을 작성한 뒤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한 국가에 전달한다. 각국은 상호 교환한 명단에 따라 서로 필요한 범죄자를 인도한다. 대통령 등 국빈 방문 시 일부 범죄자를 송환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타국 정부가 특정 정치범을 지목해 교환을 요청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캄보디아가 요구한 인물은 살인, 마약 유통 등 형사 범죄를 저지른 인물도 아니다. 이세련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캄보디아 정부의 요청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캄보디아의 요구는 범죄인 인도 조약에 명시된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도 어긋난다. 2006년 베트남 정부는 반정부 인사 응우옌흐우짜인(72)의 인도를 한국 정부에 요청했으나, 법원은 “정치범은 인도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며 이를 불허한 바 있다.
캄보디아가 상식 밖 요청을 한 배경으로는 ‘양국 간 불균형한 범죄인 송환 규모’가 꼽힌다. 캄보디아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사기의 주요 근거지로, 한국 정부가 송환을 추진하는 범죄자는 수십 명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에 숨어 있는 캄보디아인 범죄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경찰청은 캄보디아 정부의 요구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부부를 인도받지 못해 수사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울산경찰청, 강원경찰청, 서울 강북경찰서 등은 이들 부부를 조사하기 위해 6주째 기다리고 있다. 김영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인 인도 조약상 해당 문제는 외교부와 대사관이 해결해야 한다”며 “캄보디아의 조약 위반을 지적하고 공적 원조 등의 수단을 활용해 협조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