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셰프 "한식은 창조의 땅"

[이진섭의 음미(吟味)하다]

미쉐린 2스타 오너 셰프 조셉 인터뷰

한국 식재료에 매료돼 한식 시작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을 꿈꾼다.

프랑스에서 온 소믈리에 야니스
"내 요리 최고의 마리아주"
<2017 미슐랭가이드 서울>이 2016년 11월 출판된 이후 약 10년 동안 한국의 음식 문화에 수많은 문화 접변이 있었다. ‘많이 먹는 시대’에서 ‘제대로 먹는 시대’로 먹거리 생활양식이 변하면서 한식 미슐랭 레스토랑의 인지도가 올라갔다. 이런 흐름에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는 레스토랑과 셰프에 팬덤을 만들면서 미식 문화 현상에 기폭제가 되었다.

전 세계에 걸쳐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작년 기준 약 3650곳 정도다. 1스타 레스토랑은 약 3000곳, 2스타는 약 500곳 그리고, 3스타는 약 150곳이다. 레스토랑을 미식 문화의 이정표로 만들기 위해 매년 셰프들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음식과 철학을 접시에 담아낸다. 지난 2월 한국의 레스토랑들도 한 차례 별들의 전쟁을 치렀다.

한식의 매력에 푹 빠진 호주 출신 ‘조셉 리저우드(이하: 조셉 셰프)가 오너 셰프로 있는 <에빗(EVETT)>이 미슐랭 2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외국인 관점에서 한식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재료를 연구하며, 창의적 해석으로 한식 다이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에빗>을 방문했을 때, 조셉 셰프는 점심 시간대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는 중이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의 푸른 눈은 두릅, 청어, 산나물, 된장 같은 한식 재료를 얘기하면서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의 눈망울로 변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명인들을 찾아뵙고, 직접 재료를 공수하러 돌아다니며 한국의 맛과 멋을 발굴하는 모습은 장인 같았다. 미슐랭 2스타 승격 후 어떤 비전으로 <에빗>을 이끌어갈지 그의 청사진과 함께 조셉이 만든 음식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소믈리에 ‘야니스 페럴’도 함께 만났다.
에빗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 사진. © 이진섭
에빗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 사진. © 이진섭

▷ <에빗>이 미슐랭 2스타로 승격된 것을 축하합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 예약이 많아졌고, 미슐랭 2스타 발표 후에는 이제 3개월 이상 예약이 꽉 찼어요. 미슐랭 2스타로 <에빗>이 발표되는 순간 무언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 정말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에빗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 사진. © 이진섭
에빗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 사진. © 이진섭
▷ <에빗>의 터전을 옮기신 후, 어떤 점들이 달라졌나요?

전에는 공간이 협소해서 조금 힘들었어요. 지금은 공간이 넓어져서 테스트, 서비스, 준비 주방 등 세 곳으로 나누어 주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한국 재료와 음식을 다양하게 테스트하고 있는데, 처음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부터 저는 한국 재료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거든요. 공간이 넓어지니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에빗을 경험하는 고객들이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요.
레스토랑 '에빗' 내부 / 사진. © 이진섭
▷ 공간 자체가 아름다워요. 운치가 느껴지는 대감집 정자 같은 느낌도 있고, 주방 테두리를 장식한 벼와 메주가 인상적이었어요. 레스토랑의 컨셉이 있는지요?

한국의 식재료만을 사용해 외국인의 시각으로 풀어낸 한국 음식이 레스토랑의 콘셉트에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고급요리는 거의 트러플과 한식의 조합, 캐비어와 한식의 조합이었는데요. 한국에는 재료가 풍부하고, 특별해서 굳이 트러플이나 캐비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 맛과 멋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몫은 결국 한국 식재료를 다른 방식과 차원으로 선보이는 거예요.

▷ 한국에 오시기 전에 영국의 ‘키친 8’과 ‘레드버리’, ‘톰 에이킨스’, 미국의 ‘프렌치 런드리’에 계셨죠. 셰프님이 <에빗>을 운영하는데, 좋은 초석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 호주에서 일할 때는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는데, 호주는 일주일에 30시간 정도 일할 수밖에 없었기에 배우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미슐랭 레스토랑은 셰프들을 밀어붙이는 강도가 훨씬 셌는데, 당시 저는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했습니다. 그때 성장했던 것 같아요. 파스타와 미슐랭 코스를 구성하는 법을 배웠고, 레스토랑을 옮기면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랬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일하는 경험을 축적해 나가고,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단 것을 깨달았어요.
에빗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 사진. © 이진섭
▷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던 경험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셰프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2016년 고객들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던 경험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들과 같이 산에 오르고, 매일 요리하고 식사하면서 셰프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유대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산지대고 산소도 부족해서 신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극한 상황에서 요리를 하면서 제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던 시간이었습니다.

[2016년, 세상에서 가장 높은 팝업 레스토랑]

▷ 예전에 <에빗>에서 식사할 때는 개미를 볼 수 있었는데, 최근 메뉴에서 사라진 것 같던데요.

개미는 고객들이 흥미를 느끼는 메뉴였지만, 한식 재료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코스들이 개미에 가려지는 것 같아서 과감히 없앴습니다. 한국 음식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가 메뉴에 더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이게 <에빗>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이기도 해요.

▷ 코스 중에 배추 뿌리로 연꽃 모양을 만든 ‘집중’이라는 메뉴와 흑마늘 퓌레와 멸치, 달고나 칩을 더해 짭짤하고 고소한 맛을 살린 ‘메주 도넛’, 그리고 잘 차려진 한상이 응축된 ‘한우와 토종쌀밥’이 인상적이었어요. 메뉴들을 구상할 때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직접 명사나 농부를 찾아가서 뵙기도 하고, 실제 식재료를 공수하러 다니면서 영감을 얻어요. 제가 직접 체크하고, 경험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에빗>을 오픈하고 난 후부터 한 번도 변함없는 마음입니다.
[좌측부터] 집중 (수확 후 흔히 잊혀지는 배추 뿌리에 주목한 요리로, 한국 사찰 음식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깨달음의 상징인 연꽃을 모티브로 표현한 메뉴), 메주 도넛(‘겉.바.속.쫀(득)’ 찹쌀 도넛 안에 캐러멜라이즈드 크림을 가득 채우고, 청국장 가루로 장식한 접시에 올려진 메뉴), 한우와 토종 쌀밥(에빗팀이 직접 심고 수확을 도운 귀도쌀로 밥을 짓고, 숯불에 구운 한우에 2019 빈티지 된장을 더한 메뉴)
▷ 봄에는 두릅, 산나물이 좋고, 여름에 과일이 맛있고, 가을에는 능이가 맛있다는 얘길 한 적이 있으시죠? 한식과 재료에 대한 탐구 혹은 호기심은 언제부터 가지신 것인지. 셰프님이 생각하는 한식의 잠재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호주나 영국에 있을 때, 슈퍼마켓에 가면 바나나, 오렌지, 사과가 항상 있었어요. 1년 내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국의 슈퍼마켓은 채소, 과일이 계절마다 달랐어요. 한국 음식의 잠재성이 바로 재료에 있다고 봅니다. 산, 들, 강, 바다 이렇게 자연과 맞닿아 있는 나라도 드물고요.

▷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음식뿐 아니라 와인과 음료라고 생각하는데요. 에빗만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면 한번 말씀해 주실래요?

갈이 일하는 셰프들이 가장 특별해요. 저는 <에빗>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레스토랑을 떠나도 정말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제가 손님들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한식에 와인을 페어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저희는 소믈리에 ‘야니스’와 와이너리에 약 2500여 병의 와인을 갖고 있습니다. 리스트를 보시면 세상 어느 미슐랭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을 만큼 질 좋은 와인을 갖춰놓았습니다.
에빗의 소믈리에 ‘야니스 페럴(좌)’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우)’ / 사진. © 이진섭
▷ <에빗>의 소믈리에 ‘야니스’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프랑스 출신의 소믈리에 야니스는 7살부터 와인을 배웠습니다. 그냥 가정 교육 같은 거죠. 부모님이 주는 샤도네이, 피노누아 열매를 직접 맛보고, 궁금하면 마셔보고. 아마 <에빗>의 음식이 저라면, 음료는 야니스겠네요. 저희는 환상의 마리아주 같이 호흡이 잘 맞아요.

▷ 셰프를 하면서 어느 순간이 가장 보람차세요?

<에빗>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보람차고 행복한 것 같아요. 사실 2019년 10월 23일 미슐랭 1스타를 얻고 석 달 후 코로나19 팬더믹으로 한동안 고생했거든요. 이제는 음식으로 행복해하는 손님들만 봐도 행복합니다. 제 옆에 야니스처럼 든든한 음식 동료들이 있다는 게 큰 자부심을 줍니다.

▷ 10년 후에 조셉 셰프가 궁금한데요.

요리는 저에게 일로써 재미를 주고,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줘요.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저는 속으로 "창조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한식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굴하고, 문화현상을 만들어가는 <에빗>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