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채용한 '천사' 사장님 부부…3억 체불 '악마' 사업주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장애인 근로자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부정수급하는 방법으로 수억원을 떼먹은 악덕 사업주가 구속됐다. 이 사업주는 당국으로부터 위법 사실이 적발되자 일단 임금을 지급한 후 근로자에게 강요해 현금을 돌려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일부 장애인 근로자는 5300만원의 임금을 체불당했는데 그기간동안 불과 400만원을 임금으로 받는 등 심각한 착취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용노동부 양산지청(지청장 권구형)은 20일 병원 의류 세탁업체를 운영하면서 장애인 12명을 포함한 근로자 22명의 임금과 퇴직금 등 합계 2억 8000여만 원을 체불한 사업주 A씨를 근로기준법·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장애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급하면서 장애인 명의의 별도 통장(대포통장)을 만들어 최저임금액 이상을 지급하는 것처럼 꾸몄다. 또 이체확인증을 장애인고용공단에 제출해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수급하고, 이체된 금액은 당일 현금으로 모두 출금해 편취하는 수법으로 착취했다.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지원받은 장애인 고용장려금은 4억 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애인 고용장려금 장애인고용법 제30조에 따라 의무고용률을 초과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이다.

A씨는 지적 장애가 심하거나 고령의 근로자들이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운 점을 악용해 임금을 매월 지급하지도 않았다. 이마저도 최저임금에 크게 미달하는 임금(최저임금의 1/2정도)을 지급했으며, 범행에는 A씨의 배우자도 가담했다.

피해를 입은 한 장애인 근로자의 경우 지급받지 못한 임금이 5300여만 원, 퇴직금이 2000여만 원에 달했다. 그간 이 근로자는 장애인고용공단이 지원한 장애인 고용장려금 600만원보다 적은 400만원을 임금으로 지급받은 셈이다.

A씨는 고용부 양산지청이 2022년 실시한 사업장 근로감독에서 연장, 휴일근로 가산수당(재직근로자 23명, 630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해 시정지시를 받게 되자, 대포통장 등으로 입금한 후 이체증을 제출해 시정이 완료된 것처럼 했다. 이후 장애인에게 이체한 금액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비장애인 근로자들을 속이거나 강요해 이체된 임금을 반납받는 등의 수법으로 근로감독 업무까지 방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양산지청 감독관이 의사능력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근로자에게 집중적으로 체불이 발생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양산지청 감독관들은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의 끈질긴 수사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 A씨는 일말의 반성이나 뉘우침이 없이 임금체불 사실을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자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은혜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식의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했지만, 장애인 근로자를 찾아가 사건 취하를 강요하거나 백지 쪽지에 서명날인을 받아 가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마저 드러나면서 결국 구속됐다.

권구형 지청장은 “임금체불은 단순한 채무불이행이 아니라, 근로자와 그 부양가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민생범죄이자 근로자가 제공한 노동의 가치가 부정되는 인격권의 침해”라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