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삼성전자, 소니 전철 밟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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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4
혁신 아이콘이었던 소니 워크맨
추격자·신기술에 밀려 쇠락
성과에 목매는 초격차 전략은
혁신 기업 도전에 쉽게 흔들려
과거 소니의 실패 교훈 삼아
한발 앞선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
전영민 중앙대 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이쯤 되면 ‘베끼기’의 달인인 일본 경쟁사들이 그냥 계실 리 만무. 유사품이 쏟아져 나왔다. 삼성도 1982년에 ‘마이마이’를 내놓으며 빠른 추격자니 패스트 팔로어니 흐뭇하게 설명하지만 그냥 민망한 ‘카피캣’이었다. 설마 소니가 그걸 예상 못했을까? 크기를 추가로 줄이는 작업에 착수한 지 오래였다. 베끼되 개선하고, 극한까지 크기를 줄이는 게 그들의 본성이라고 이어령 선생님이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말씀하셨던가? 소니는 아예 카세트테이프 크기까지 줄여버리겠다고 결심한다. 그 지난한 축소 과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모터와 껌 사이즈의 리튬이온 전지까지 만들어낸다. 그렇게 테이프 크기라는 궁극에 도착했는데 이제 끝인가? 소니는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테이프 자체를 더 작게 만들어 담뱃갑 크기의 워크맨을 내놓았다. ‘어때?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라며 기염을 토하는 소니, 거기엔 수많은 연구원의 한숨과 밤샘이 녹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완벽한 음질의 CD란 녀석이 나와버렸다. 크기가 아니라 음질이 기준이 된 세상, 축적한 기술의 상당수가 무용지물이 됐다. 그래도 소니는 관록이 있으니 CD시장에서도 존재감을 지켰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 한국의 디지털캐스트가 CD도 필요 없는 MP3 기술을 내놓았고 한국의 아이리버가 담뱃갑 3분의 1 크기의 MP3 플레이어로 세상을 제패했다. 여기에 아이디어 훔치기의 달인 애플이 ‘음악은 훔쳐서 듣지 말라’며 아이튠즈를 내놓았다. 판도는 또 엎어졌고 소니가 낄 자리는 전혀 없었다.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다. “TV는 소니”라고. 소니가 1968년에 출시한 ‘트리니트론’은 TV 기술을 발전시킨 공로로 에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소니는 브라운관에서 놀라운 초격차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런 소니를 죽자고 추격하던 삼성은 그들을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 불렀다. 그러던 삼성이 브라운관이라는 벽을 우회한다. 신기술인 PDP를 받아들여 브라운관 없는 TV시장을 완전히 제패한 거다. 그런데 요즘 소니, TV를 만들기는 하나?
추격자는 몸은 힘들어도 ‘이 길이 맞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 속은 편하다. 그 방식의 성공을 입증한 경쟁사가 저 앞에 떡하니 있으니 ‘닥치고 야근’으로 격차를 줄이고 추월하면 그만. 그렇게 밤새워 추월에 성공하고 나면? 대체로 재역전을 못 하게 그 격차를 확대하는 초격차 전략을 선택한다. 넘사벽을 만들어 지금의 잉여를 오래 누리겠다는 속셈인데 이 또한 해온 걸 더 잘하는 거니 몸은 힘들어도 속은 편할 수 있다.
삼성은 요즘 더 빨리 2나노 기술에 도달하겠다고 각오를 밝히시는데 2나노, 원자 10개 폭이라고 한다. 그런 축소 방식은 성공할수록 물리적 장벽에 점점 다가서게 된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혁신은 ‘크기 줄이기’가 아니었다. 창의성 넘치는 창업자가 사라진 후 밤샘으로 초격차를 유지하려던 소니가 잘했던, 신기술의 등장으로 번번이 깨졌던 그 방법은 지속적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혁신의 아버지’ 조지프 슘페터가 진정한 혁신 활동이 단순한 기술개발 활동으로 치환되면서 기업이 망한다고 진작에 말씀하셨는데, 최근에는 삼성이 진정한 혁신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꾸만 불안해진다. 제발 이기는 방법에서도 소니를 극복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