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형마트 규제 개혁' 얘긴 왜 없을까

10시간 사모펀드만 탓한 국회
직원·점주 구제 위해 규제 풀어야

배태웅 유통산업부 기자
“국회의원분들 사모펀드 규제가 필요하다고 10시간 넘게 호통치시네요. 대형마트 규제 얘기는 2분 나온 게 다네요. 국회에서 이 법부터 바꿔주면 좋을 텐데요.”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홈플러스 긴급 현안 질의’는 오전 10시 시작해 오후 8시까지 이어진 ‘마라톤 청문회’였다. 저녁 자리를 함께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중계를 보며 씁쓸하다는 듯 이런 관전평을 했다. 경쟁사가 위기에 처한 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이날 현안 질의에서는 홈플러스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말 폭탄이 쏟아졌다. MBK파트너스가 경영 실패를 책임지지 않고 기습 회생을 신청한 데 대해 “하이에나와 같다” “먹튀(먹고 튀기)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10시간이 넘게 이어진 현안 질의에서 홈플러스를 위기로 내모는 데 일조한 유통 사업 규제 완화에 대한 질의는 단 한 차례 나왔다.

‘유통산업발전법’은 2012년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개정됐다. 대형마트들은 이 법에 따라 전통시장의 반경 1㎞ 내에 출점이 불가능해졌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로 제한하고 의무휴업일도 월 2회 지정해야 한다. 영업시간이 아닐 때는 온라인 주문도 받을 수 없다.

영업시간 감소, 규제받지 않는 e커머스 업체의 급속한 성장은 대형마트 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2011년 6%대이던 홈플러스의 영업이익률은 2014년 2.7%로 급락했다. MBK파트너스의 인수 전에도 규제 영향으로 이미 기초체력이 약화하고 있었다.

불합리한 규제를 걷어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됐다. 지난해 1월 정부가 의무휴업일 폐지와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내놨지만, 여소야대 정국에 밀려 21대 국회가 끝나자 자동 폐기됐다. 이어진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내용들이 발의됐지만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개정안은 언급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만난 한 홈플러스 입점 업주는 “대금을 받지 못해 답답하다”면서도 “그래도 홈플러스가 살아나야 점주들도 함께 살 수 있다”고 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소속 직원도 “홈플러스는 현재 정상 영업하고 있다는 점을 국민이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온·오프라인의 유통 경계가 없어지는 시대에 ‘전통시장 대 대형마트’라는 시대착오적 규제에 갇혀 대형마트를 포함한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보여주기식 비난보다 근본적인 규제 개혁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