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상자 구매제한 사라지자…가성비 따지던 2030 돌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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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가성비 따지더니…2030 도넛 몇 상자씩 사가는 이유
크리스피도넛X플레이브 협업상품 '인기'
MZ세대 팬덤 소비 트렌드
3일만에 도넛 2만5000개 팔려 나가

지난 20일 오전 8시께 서울 마포구에 있는 크리스피크림 도넛 매장. 이른 아침부터 도넛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은 20대 박모 씨는 제품 이 같이 말했다. 버추얼(가상)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의 팬인 그는 구매한 도넛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포토카드, 인형 등으로 주변을 꾸민 뒤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남겼다. 그는 “이제 플레이브 카페를 구경하러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플레이브의 인기가 뜨거워지면서 해당 아티스트와 협업한 도넛을 구매하려는 팬들도 있다. 2023년 데뷔한 5인조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는 실제 가수를 공개하지 않고 컴퓨터 그래픽과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가상 캐릭터로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1990년다 후반 등장한 국내 1호 사이버 가수 ‘아담’의 후배인 셈이다. 플레이브의 인기가 커지자 팬들은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오픈런’ 하거나 품절 상품을 구하러 여러 지점을 방문하고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식사나 커피값 등은 줄여도 ‘최애’(제일 좋아하는) 관련 지출에는 주저없이 지갑을 여는 2030세대의 팬덤 소비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21일 크리스피크림 도넛을 운영하는 롯데GRS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제품은 출시 직후 사흘 만에 2만5000개 이상 팔렸다. 이는 목표 판매량의 187%에 달하는 수치다. 한 매장 직원은 “출시 이후 한동안은 플레이브 도넛 재고 문의 전화만 받았다. 물건이 계속 나가니까 아예 도넛 상자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팔았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향한 팬들의 씀씀이는 구매 개수 제한이 해제된 후 더 커졌다. 지난주 초부터 1인 1상자 구매 제한이 사라지자 한 번에 도넛 4~5상자씩 사가는 팬들이 늘고 있다. 도넛 구매 시 제공되는 플레이브 브로마이드를 얻기 위해서다. 한 달 전 플레이브의 팬이 된 신모 씨는 “덕후라면 기본 3개는 사야 한다”면서 “하나는 전시용, 하나는 보관용 다른 하나는 선물용”이라고 설명했다.
소비 여력이 제한적인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팬덤 소비’가 강해지는 이유는 젊은 세대의 지출 패턴이 변화한 데 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청년들 사이에선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플렉스’(Flex) 등 사치성 소비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나날이 물가가 급등하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소비 제1원칙으로 삼는 청년들이 늘었다. 다만 취향을 저격하는 대상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망설임 없이 소비한다. 평소엔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곳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허경옥 성신여대소비자학과 교수는 “MZ(밀레니얼+Z)세대의 전형적인 소비 트렌드”라며 “기성세대에 비해 요즘 젊은 세대는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애도 강하다 보니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는 아끼지 않고 소비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본인과 연령대가 비슷한 아이돌이나 인플루언서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며 “그 애정이 관련 행사나 팝업 이벤트에 대한 지출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플레이브와 협업을 진행 중인 롯데GRS 관계자도 “도넛은 이달 31일 판매가 종료될 예정”이라면서도 “아직 확정된 바는 없지만 이후 소비자 반응을 보고 플레이브와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검토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