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피라미드, 스마트폰까지…유현준이 풀어주는 공간 인류사

한자로 인간은 '人(사람 인)'에 '間(사이 간)'을 사용한다. 인간의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공간은 '空(빌 공)'에 '間(사이 간)'을 사용한다. 공간에도 '間'이 들어가 있다. 공간의 의미는 비어 있는 것과 비어 있는 것 사이의 관계에서 찾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공간 인간>에서 "'인간'과 '공간' 두 단어의 구성이 비슷하듯 인간과 공간은 서로 협력하면서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 이번 그의 신간은 수십만 년 넘게 인간과 공간이 공진화해 온 긴 역사를 담았다. 모닥불에서 시작해 피라미드, 수도교, 하수교, 엘리베이이터와 고층 건물, 자동차와 고속도로, 스마트폰까지 건축 공간이 만드는 관계가 어떻게 사회를 진화시켜 왔는지 보여준다. 대다수 역사책은 인류의 역사를 왕, 정치가, 전쟁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널리 알려진 세계사는 사실상 '전쟁사'다. 하지만 건축가인 저자는 역사도 공간이라는 프리즘으로 읽어냈다. 그는 "세계사를 공간의 눈으로 보면 성취와 진화의 과정으로 읽힌다"며 "인류는 건축 공간을 이용하면서 진화의 속도를 가속해 왔다"고 말한다. 또 계단처럼 진화하는 역사에서 "계단 턱을 올라가는 데 도움을 준 것이 '새로운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건축 공간에서 최초의 구심점이었던 모닥불은 수십 명의 사람을 모았고,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백 명 규모의 집단을 만들게 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명한 벽돌은 지구라트 신전을 만들게 했고, 인간 사회는 수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피라미드는 수십만 명을 하나의 종교로 묶었고, 수도교는 로마를 인구 100만 도시로 만들었다. 유럽에선 교회가 건축돼 기독교로 하나됐고, 이 인구는 7000만명에 달했다. 20세기 들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고층 건물을 만든 미국 뉴욕은 1000만명 이상 집단을 만들었고, 인터넷은 가상공간으로 수십억명을 잇고 있다.

그는 사피엔스가 지구상의 여타 종들과 달리 빠른 속도로 진화한 배경도 "공간을 잘 이용해서"라고 주장한다. '공간을 잘 이용해서 발전하고 진화한 인간'의 의미로 '호모 스파티움'이란 별칭도 제안했다. 공간을 뜻하는 라틴어 '스파티움(spatium)'에서 따온 말이다. 이 책의 제목 '공간 인간'도 '호모 스파티움'을 번역해 나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