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엔비디아의 성공 뒤에는 화이트보드와 이메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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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8
엔비디아 레볼루션
태 킴 지음 / 김정민 옮김
서삼독 / 448쪽│2만5000원
'주 80시간 근무' 젠슨 황
전직원이 보낸 이메일 보고
공통점 찾아내 중요 이슈 파악
직원들은 CEO 주재 회의서
화이트보드에다 자기 업무 설명
실력 기르지 않으면 도태


책은 엔비디아가 2023년 AI 붐에 올라탈 수 있었던 건 치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젠슨 황은 2013년부터 AI 시대를 예견하고 회사의 중심에 AI 반도체를 뒀다. 오픈 AI가 챗GPT를 공개하며 AI 대중화의 문을 열었지만, 그 열매를 엔비디아가 독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젠슨 황은 어떻게 AI 시대를 예측했을까. 천재성의 발로란 얘기도 있지만, 저자는 엔비디아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꼽는다. 보고 문화부터 독특하다. 엔비디아 직원은 젠슨 황에게 1~2주에 한 번 ‘톱5 이메일’을 보낸다. 주력하는 상위 업무 5개와 시장의 주요 이슈를 정리한 일종의 보고서다. 젠슨 황은 일요일 저녁 직원들의 이메일에 피드백을 준다. 2013년 젠슨 황이 AI 시대에 대해 감을 잡은 것도 톱5 이메일에서 ‘머신러닝’ 등의 단어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최고경영자(CEO)와 직접 소통하며 능력을 뽐낼 수 있는 덕분에 내부 정치에 골몰하지 않는다고 한다.근면성도 엔비디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저보다 똑똑한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분명한 건 저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는 겁니다.”(젠슨 황)
CEO부터 솔선수범하니 직원들도 ‘주 80시간’ 근무는 기본이다. 젠슨 황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의 전문성도 필요하다. 저자는 엔비디아의 화이트보드 문화에 주목한다. 젠슨 황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직원들은 화이트보드를 이용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빈 화이트보드를 채워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실력은 다 드러난다. 교수 역할을 맡은 젠슨 황의 따끔한 가르침은 보너스다.
엔비디아도 존폐 기로에 몰린 적이 있다. 1995년 개발한 첫 그래픽 칩 ‘NV1’은 ‘쓸데없는 고성능’이란 비아냥을 들으며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AI 서비스 개발을 위한 필수 소프트웨어로 평가받는 ‘쿠다(CUDA)’를 개발할 때도 위기가 찾아왔다. 투자 비용이 급증한 탓에 개발 기간인 2007~2008년 엔비디아 주가는 80% 급락했다. 애널리스트 50여 명이 엔비디아 본사로 몰려와 쿠다 개발 중단을 압박했다. 젠슨 황은 밀고 나갔다.위기를 극복한 젠슨 황은 기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데 전력투구했다. 컴퓨터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AI 학습에 활용하게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인 젠슨 황의 전문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얘기다.
엔비디아는 기술력에 번뜩이는 사업 전략을 접목해 성장 가도를 달린다. 각 대학 연구실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GPU를 무료로 지급해 쿠다와 함께 AI를 개발하는 데 활용하게 했다. ‘소 한 마리 다 팔기’로 불리는 전략도 흥미롭다. 생산 과정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칩이 나오면, 엔비디아는 이 칩을 활용해 저렴한 보급형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엔비디아는 매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지만 젠슨 황은 만족할 줄 모른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 “넌 너무 형편없다. 30일 뒤에 망할지도 모른다”고 채찍질한다. “2등은 첫 번째 패배자”라고 말하며 ‘압도적 1등’을 외치는 CEO 앞에서 엔비디아 직원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틈이 없다.저자는 엔비디아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엔비디아의 가장 큰 적은 경쟁사가 아니라 엔비디아 자체다.” 젠슨 황이 엔비디아를 떠나지 않는 한 성공 신화는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