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의도치 않은 주 4일제 실험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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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황금연휴 기대보다 걱정
5일 치 업무 3~4일에 끝내려면
야근은 기본, 점심에도 일해야
생산성 향상 없는 주 4일제는 공상
저출산으로 노동 공급 이미 감소
근로일수 줄면 성장동력 더 약화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는 어린이 경제·논술 신문 ‘주니어 생글생글’과 중·고교생 경제·논술 신문 ‘생글생글’을 주 1회 제작한다. 주간 단위로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어 종종 주 4일 근무제 자연 실험이 이뤄진다. 실험 결과는 별로 즐겁지 않다. 주 4일 일하는 주엔 매일 한두 시간씩 야근은 기본이다. 점심 식사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늦어도 낮 12시30분엔 자리로 돌아온다. 게으름을 피웠다간 빨간날 휴일수당도 못 받고 집에서 일해야 한다.

혹시 한국 근로자의 생산성이 당장 주 4일제를 시행해도 될 만큼 충분히 높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시간당 51.0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7위다. 미국(83.6달러)과 독일(83.3달러)의 60% 수준이다.근로일수를 줄이고도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도 일부 기업은 격주 주 4일제 등 다양한 근무제를 운용한다. 하지만 그런 기업은 대부분 대기업 아니면 공공기관이다. 주 4일제를 일률적으로 시행해도 될 만큼 중소기업과 자영업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카페에는 “유통 쪽 자영업자의 아내인데 주말에 직원들은 쉬고 남편은 일한다.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은 짧아졌는데 시급은 늘었다. 주 4일제? 너무 힘들고 소외감 느껴지는 정책”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주 6일제일 때 관공서 부근에서 장사했는데 주 5일제가 시행되고 폐업했다. 주 4일제가 시행되면 관공서와 학교, 대기업 부근 자영업자들 줄폐업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다름 아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네이버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올라온 사연이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발표한 ‘20대 민생 의제’에 주 4일제를 포함시켰다.
주 4일제를 통해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생각만큼 많이 일하지 않는다. 한국의 근로자 1인당 연간 근로 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742시간)보다 불과 7% 길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높고 시간제 근로자 비율이 낮아 평균 근로 시간이 길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풀타임 근로자를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한국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OECD 평균보다 1.3시간 길었다. 연간 70시간이 안 된다.올해 주 5일제 근로자의 휴일은 120일이다. 연차휴가 15일을 빼면 근무일은 230일, 주 4.4일이다.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 대표 말이 무색하게 이미 대다수 근로자가 1주일에 평균 4.4일 일한다.
한국은 그러잖아도 저출생·고령화로 노동 공급이 감소하고 있는 나라다. 한국은행은 작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잠재성장률이 2020~2029년 연 1.8%에서 2045~2049년 연 0.7%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해 노동의 성장 기여도 하락을 주원인으로 꼽았다. 주 4일제를 도입하면 노동 공급은 더 줄어든다. 주 4일제로도 부족하다는 건지 국회에는 제헌절, 어버이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까지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황금연휴가 생길 판이다. 좋아할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