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청소년 건강 다 잃어야 액상담배 규제할 건가

합성니코틴 규제 제자리걸음
표 계산에 국민 건강권 외면

남정민 경제부 기자
“지난달에는 통과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정부 핑계를 대며 또 공회전 중이에요.”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한 전자담배를 ‘담배’로 규정하고 세금을 매기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2016년 처음 발의됐는데 9년째 제자리”라며 “그사이 청소년들이 학교 앞에서도 버젓이 액상담배를 들고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연초 잎으로 만든 제품만 담배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합성니코틴으로 만든 액상담배는 스쿨존에서도 무방비로 판매되고 있다. 세금이 붙지 않아 가격이 저렴하고 냄새도 나지 않아 청소년 사이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자의 30%가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하고, 그중 60% 이상이 일반 궐련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도 담배사업법 개정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회 문턱에 9년째 막혀 있다. 기획재정부는 작년까지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입법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다 합성니코틴에 들어 있는 유해물질 함량이 연초보다 높다는 보건복지부 용역 결과가 지난해 말 나오자 드디어 입법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달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는 법안이 통과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 이유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논의는 여전히 원점이다.

국회는 또 정부 탓을 하고 있다. 기재부는 ‘합성니코틴을 판매하는 사업자는 앞으로도 합성니코틴만 판매해야 한다’는 문구를 법안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합성니코틴 판매자가 담배 판매자가 되면 이론적으로 연초까지 취급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러면 전국 담배 소매인이 갑자기 4000명 가까이 불어나는 부작용이 생기니 이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자 야당이 ‘기재부가 새로운 이슈를 갑자기 끄집어내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의논해야 한다’며 논의를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법 개정을 미루려는 야당의 핑계로 보고 있다.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액상담배에 세금을 부과해 가격이 올라가면 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초 선거 일정이 없는 올해를 법 개정의 골든타임이라고 봐왔다”며 “그런데 조기 대선 가능성이 생기자 국회가 주저하는 게 아니냐는 게 합리적 의심”이라고 말했다.

그사이 2023년 합성니코틴 수입량은 216t으로 전년(121t) 대비 80% 증가했다. 베트남에서는 합성니코틴 용기에 마약을 들여오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표 계산에 눈이 멀어 국민 건강권을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