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보이콧 테츨라프…"美 민주주의에 배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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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인터뷰
5월 내한 獨바이올리니스트
1년간 22차례 美 연주회 취소
"음악은 영혼 어루만지는 수단"
서울서 수크 등 4개 작품 연주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사진)는 지난 21일 한국 언론과 한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테츨라프는 베를린 필하모닉, 드레스덴 필하모닉, 서울시립교향악단 등에서 상주 예술가로 활동한 1966년생 독일 바이올리니스트다. 2015년 디아파종 황금상, 독일 음반평론가상을 연달아 받으며 세계적인 입지를 다졌다.오는 5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일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한다. 2023년 무반주 리사이틀 이후 2년 만의 내한 독주회다.
◇“음악은 영혼 어루만지는 수단”
테츨라프는 최근 한 달간 문화계 동향을 논할 때면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인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밀착 행보에 불만을 품고 지난달 미국 투어 공연을 취소해서다. 올봄부터 내년 4월까지 뉴욕 카네기홀 등에서 22차례에 걸친 연주회 일정을 과감히 없앴다. 이후 헝가리의 피아노 대가인 안드라스 쉬프도 미국 공연을 취소해 트럼프 보이콧에 나선 클래식 음악계의 전선이 넓어졌다. 테츨라프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공연 보이콧의 이유에 대해 밝혔다.“미국에서 번져가고 있는 공포, 유럽인의 (어려워지는) 삶 등을 봤을 때 공연을 더 이상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주자는 연주만 하면 된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음악에는 자유와 평등, 개인의 중요성 등을 명시하는 곡들이 있어요.”그는 베토벤이 교향곡 영웅을 나폴레옹에게 헌사하려고 지었다가 나폴레옹이 돌연 황제 자리에 오르자 이에 배신감을 느끼고 작업을 수정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테츨라프는 “베토벤이 (나폴레옹의) 민주주의에 배신감을 느낀 것처럼 우리도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음악은 평등과 배려 등의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보이콧은 그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일이다. 지난달 28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 따르면 테츨라프는 미국 공연 수익금 중 32%를 미국에 세금으로 낸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 정책과 성소수자 정책 변화 등을 언급하며 “그 돈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나라에 쓰이는데, 내가 받을 돈만 받고 집에 가겠다는 생각은 못 하겠다”고 했다.
다만 음악가가 정치가로 비칠 수 있다는 점과 관련해선 선을 그었다. 테츨라프는 “정치 상황이나 진보, 보수를 논하려는 게 아니라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며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사회를 향한 저항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슈베르트 등은 부유층과 권력자가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떠올리며 음악을 만들곤 했다”며 “음악은 사람을 하나로 모으고 영혼을 만지는 인간적인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공연, 자기만의 길 간 ‘수크’ 조명”
과감한 행보로 화제를 모은 그는 5월 내한 공연에서 곡별로 콘셉트를 달리해 선보인다. 테츨라프는 공연 1부를 요세프 수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소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으로 짰다. 2부에선 시마노프스키의 ‘신화’,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다. 이들 4개 작품은 작곡 시기가 25년 내로 시기 차이가 크지 않지만 음악적 요소가 뚜렷이 대비된다. 1부 첫 주인공은 테츨라프가 지난해 녹음 앨범을 내놓은 수크다.테츨라프는 “수크는 인상주의, 표현주의, 무조음악 등을 섞어 자기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작곡가지만 그간 많은 조명을 받진 못했다”며 “공연의 첫 곡으로 그를 조명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1부의 끝은 브람스다. 테츨라프는 “브람스의 소나타는 독일 낭만주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야수성이 넘치는 면모도 있다”며 “(2부 공연인) 프랑크와 시마노프스키의 곡에선 반대로 프랑스 음악의 강한 영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