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왈츠의 박자를 타고 온다…오스트리아 DNA 지닌 이병욱

25일 한경 arte필과 협연
이병욱 광주시향 예술감독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
"한국엔 흥, 왈츠엔 슈메!"
한국에서 오스트리아 음악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지휘자가 있다. 이병욱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50·사진)이다. 유년시절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라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수석 졸업했다. 현지에서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인 OENM의 수석 객원지휘자로도 활약했다. 현재 그의 국적은 오스트리아다. 이 감독은 오는 2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경arte필하모닉과 ‘왈츠의 왕’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연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로데아트센터에서 만나 왈츠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에서 왈츠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먼저 회상했다.

“오스트리아의 고등학교 축제에선 왈츠를 추는 무도회가 지금도 빠지지 않아요. 팝, 재즈, 펑크 등 취향이 제각각인 친구들도 이날만큼은 양복을 차려입고 왈츠로 하나가 되거든요.”

◇사물놀이엔 ‘흥’, 왈츠엔 ‘슈메’!

왈츠를 빼고선 19세기 음악사를 다룰 수 없다. ‘쿵짝쿵짝’ 4분의 4박자가 지금 가요의 대세라면 19세기인에겐 뒷박을 늘리는 ‘쿵짝 짝 쿵짝 짝’ 4분의 3박자가 주류였다. 경쾌한 왈츠 리듬에 맞춰 춤추는 건 당대 비엔나 사람이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려면 거쳐야 할 의례였다. 당시 ‘히트곡 제조기’에 가장 가깝던 인물이 슈트라우스 2세다. 올해는 그의 탄생 200주년. 묵직한 교향곡들 사이에서 그의 경음악을 찾아 들어야 할 까닭이다. 이 감독은 봄날의 산뜻함이 담긴 1882년작 정통 왈츠인 ‘봄의 소리’로 25일 공연의 막을 연다.

한국의 판소리에 ‘한(恨)’, 사물놀이에 ‘흥’이란 민족 정서가 녹아 있듯 왈츠에도 오스트리아 고유의 문화가 담겨 있다. 이 감독은 왈츠 감상의 열쇠로 ‘슈메(schmäh)’를 꼽는다. 슈메는 정감이 담긴 재치를 뜻한다. 때론 능글맞거나 살짝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섞이기도 한다. 본질은 각자 위트를 뽐내며 서로 친밀해지려는 노력이다. 이 감독은 “첫 두 박이 짧고 뒷박이 긴 왈츠의 경쾌한 형식에도 슈메와 비슷한 감성이 담겨 있다”며 “슈메가 곁들어진 춤을 상상한다면 왈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랑살랑 봄…폴카와 오페라타!

왈츠 연주가 끝나면 보헤미아의 춤곡인 폴카가 봄기운을 이어간다. 1부의 마지막은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장식한다. 2부에선 희극 오페라타(가벼운 오페라)인 ‘박쥐’가 전부를 채운다. 이 오페라타의 곡들은 연말 가면무도회가 배경이라 독일어권에선 연말 음악회에서 자주 들리는 노래다. 이 감독은 박쥐의 정수 부분만 1시간 분량으로 추려 선보인다. 긴 오페라 공연에 부담을 느껴온 이들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이 감독은 “박쥐는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복수극”이라며 “재밌는 노래가 많아 가볍게 즐겨도 좋다”고 말했다.이번 이 감독과 한경arte필의 협연은 조금 더 각별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이 악단과 아이브스 ‘대답 없는 질문’, 루토스와프스키의 첼로 협주곡,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등을 연주했는데, 이날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 뻔했던 공연 이후 넉 달 만에 다시 손을 맞추는 것. 이 감독은 “한경arte필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미래의 모습이 기대되는 악단”이라며 “젊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단원들의 적극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