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총 9조' 금양까지…벌써 31개사 줄상폐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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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감사보고서결산 시기를 맞아 증시 퇴출 위기에 놓인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의 작년 사업연도 감사보고서 ‘의견 거절’ 판정이 잇따르면서다.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씨의 추천으로 한때 2차전지 대장주로 꼽힌 금양도 의견 거절 판정을 받으며 유가증권시장 퇴출 대상이 됐다. 아직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한 기업이 많아 이 같은 이유로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오르는 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의견 거절' 속출
지난 21일 하루 동안만
21곳 '의견 거절' 공시
금양, 시총 6333억 달해
손실 눈덩이로 부채 누적
DMS, 영업익 흑자에도
대주주 거래 의혹에 거절
감사보고서 미제출 많아
퇴출 대상 더 늘어날 듯

◇금양 소액주주 ‘악소리’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1일 하루 동안만 총 21개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상장사가 감사인으로부터 의견 거절 판정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의견 거절을 받으면 매매가 정지되고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정리매매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금양, DMS, 범양건영, KC그린홀딩스, KC코트렐, 드래곤플라이, 이오플로우, 투비소프트 등은 이번 감사의견 거절로 새롭게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됐다. 정기 주총을 앞두고 12월 결산법인 총 31개사가 감사의견 비적정 문제로 증시 퇴출 위기에 놓인 것으로 집계됐다.‘2차전지 대표주’로 불린 금양은 감사인 한울회계법인으로부터 ‘계속기업 불확실성’을 이유로 의견 거절 판정을 받았다. 금양은 작년 말 결산 기준으로 1329억3200만원의 순손실이 발생했다. 회사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6341억9000만원 많다.
금양은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씨의 추천으로 급부상한 회사다. 한때 시가총액 9조원을 웃돌며 2023년 6월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사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작년 영업손실은 56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가 주주들의 반대와 금융감독원 제동으로 철회하기도 했다. 현 시총도 6333억원에 달해 소액주주 피해가 우려된다.
◇흑자 DMS도 갑자기 의견 거절
디스플레이·반도체 장비 기업 DMS도 작년 감사보고서에서 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작년 영업이익 345억원을 거둔 기업이다. 하지만 감사인 동성회계법인은 DMS와 정본메디컬의 거래를 문제 삼았다. 정본메디컬은 창업주인 박용석 전 대표와 두 자녀가 100% 보유한 회사다. 박 전 대표 등이 정본메디컬을 통해 이익을 얻어 DMS 경영권을 승계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동성회계법인은 “거래가 정상적 조건에서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의견을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의견 거절에 따른 퇴출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주총을 앞두고 기한 내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한 기업이 수두룩하다. 감사인의 검토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돼 감사보고서 제출이 늦어지는 사례가 많아서다. 21일까지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 공시를 한 상장사는 총 50곳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시장 9곳, 코스닥시장 41곳이다. 거래소가 2019~2023년 5년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된 175개사를 분석한 결과 감사의견 비적정, 사업보고서 미제출 등으로 퇴출당한 기업이 42개로 전체의 24%를 차지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2년 연속 감사의견 비적정(한정·부적정·의견 거절)을 받으면 즉시 퇴출당한다. 지금은 다음 또는 다다음 사업연도 감사의견이 나올 때까지 개선 기간을 부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좀비기업’ 퇴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