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문학이 韓 독서 시장에 새로운 자극 될 것"

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대표 문학 작품 소개하는
동남아시아문학 총서 발간

"침략과 식민지배 역사가 한국 독자에게 공감


"미국, 유럽, 일본에 집중된 한국 독서 시장
동남아 문학 통해 새로운 자극 줄 수 있길"
매년 한국인 관광객 수백만 명이 동남아 국가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도 이상할 만큼 우리나라는 동남아의 예술과 문학에 대해서는 냉담하다. 프란츠 카프카,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유럽과 영미권의 문학인들은 누구나 알지만 닉 호아킨, 함카를 비롯한 동남아 대표 작가들의 이름은 낯설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한국 출판 시장에서 보기 드물게 동남아 문학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2022년 국내 최초로 동남아 문학 전집인 '동남아시아문학총서'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소설을 발간했다. 올해는 한국과 필리핀 수교 75주년을 맞아 필리핀 근현대 문학 3권을 출간했다.
백수미 한세에스24문화재단 이사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이 동남아 문학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낯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여행객이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떠나지만 현지 문화나 예술을 접할 기회는 적다"며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낯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동남아 문학은 생각보다 한국 독자와 맞닿아있다는 게 백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처럼 동남아 국가들은 외세의 강제 침략과 식민 지배를 경험했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이 (그들의 문학을)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로 필리핀 문학을 들었다.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를 받으며. 문화, 종교, 언어, 이념까지 모두 다른 두 나라 아래서 통치를 받았다. 백 이사장은 "오랫동안 독립을 위해 싸운 만큼 문학도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다"며 "독립운동의 역사와 국민 정체성을 고민하는 작품이 많다"고 소개했다. 필리핀의 국민 작가인 닉 호아킨의 대표작 <배꼽 두 개인 여자>는 필리핀 식민지 역사와 독립 이후 개인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는 "우리나라와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종교, 신화, 구전 전통 등 다양한 요소 덕분에 나라마다 독특한 매력도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문학에 대해서는 "중국의 영향으로 유교적 가치관이 깊이 자리 잡았다"며 "프랑스의 식민 지배, 베트남 전쟁 등 역사적 사건을 겪어 가족과 조국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많다"고 했다.

태국 문학은 불교의 영향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인생무상, 업, 윤회 같은 개념이 자주 등장하고 인간의 내면과 깨달음을 탐구하는 작품이 많다. 오랜 왕정 역사 덕에 전통 가치관과 현대 사고방식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사회 부조리를 풀어낸 작품도 많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300개 이상의 민족이 있는 다민족·다문화 국가"라며 "그만큼 다양한 종교, 전설, 신화, 생활 방식이 녹아있다"고 말했다.

백 이사장은 동남아 문학을 소개할 때 번역을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는 언어 전공자가 적어 원작의 의도와 뉘앙스, 정서를 충실히 반영할 번역가를 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번역가가 적은 만큼 번역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앞으로 동남아시아문학총서 발간 계획을 물었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2026년에 인도네시아, 2027년에는 말레이시아 문학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백 이사장은 "동남아 소설은 미국, 유럽, 일본 문학에 집중된 한국 독서 시장에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며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작품들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