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가 말하는 '계시록'…"시대가 잉태한 작품" [인터뷰+]

"'연니버스'라는 성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계시록'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계시록'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저는 하고 있는 틀 안에서 탈출하고 싶지, 흔히 얘기하는 '연니버스'라고 하는 성을 견고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짜 성이 아니지 않습니까."

'넷플릭스의 아들', 'K 장르의 아버지'…연상호 감독처럼 많은 별칭을 가진 연출자가 있을까.

한국형 좀비물의 시초가 된 '부산행'부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은 '반도', 지옥행 고지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죄와 벌, 삶과 죽음을 깊이 있게 그려낸 '지옥'까지. 연 감독은 인간 본능에 대한 날카로운 화두로 늘 새로운 화두를 꺼내며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을 구축해 왔다. 판타지적 소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왔던 그가 비현실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를 펼친다.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을 통해서다.
'계시록' /사진=넷플릭스
'계시록' /사진=넷플릭스
극장용 영화로 기획됐던 '계시록'은 넷플릭스의 올해 첫 영화로 선보이게 됐다. 연 감독은 "극장 투자 시스템에서 '계시록' 같은 실험적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사실 넷플릭스라는 서비스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원했기 때문에 니즈가 맞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넷플릭스에서 이달에 '폭싹 속았수다'와 '계시록'을 선보였다. 장르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은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성민찬 목사(류준열)와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 이연희(신현빈)가 각자의 믿음을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만화 '계시록'을 원작으로 한다. 연 감독은 최규석 작가와 함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대로 믿고 싶어 하는 아전인수식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인간 믿음과 신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스스로 인생에 대한 궁금증이 많지 않나요.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걸까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죠. 자신이 가진 욕망이 투영될 수밖에 없고요. 욕망을 가지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고 해석하는데, 이건 종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단, 극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종교라고 생각했어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라 지금 같은(탄핵) 일이 벌어지고 있죠. '계시록'이 나오는 시점을 보면 제가 만든 작품이긴 하지만 '이 시대가 잉태한 작품'이라는 걸 요즘 느낍니다."
'계시록' /사진=넷플릭스
성민찬 역으로 열연을 펼친 류준열에 대해 '질문이 많은 배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아주 작은 것 하나, 걸음걸이까지 고민하는 배우, 본인이 하는 연기에 대해 끊임없는 의심을 하는 배우"라며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고 고민을 많이 한다. 운동하고, 영화밖에 생각 안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계단에서 넘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넘어지는 방식, 모양새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이야기 많이 한다. 몰입도, 에너지도 좋고 작품을 해석하는 방향성도 좋다. 처음 미팅했을 때, '제가 질문이 좀 많은 편인데 괜찮으시냐'고 하더라. 질문 자체의 내용이 좋았다. 류준열과 이야기를 하며 영화의 톤을 찾아 나간 것도 있다"고 말했다.

연 감독은 '계시록'에 대해 연니버스의 '응축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넷플릭스 보다 보면 '연상호꺼 하나 볼까?', '그럼 뭘 봐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딱 한 편의 영화를 보려고 할 때, '지옥' 같은 톤의 영화 한 편이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계시록'은 연 감독이 초심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영화를 오래 하기 위해선, 추구하는 바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1000만 관객을 위해, 어떤 사람은 해외 영화제를 위해 살죠. 목표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욕망에 약한 사람이라 물리적으로 욕망을 비틀 수 있는 계기 같은 것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창작자로서 건강한 상태, 의지나 욕구 같은 게 생기거든요. '올해는 이런 걸 하겠어' 하고 큰 맥락을 잡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그가 매해 새로운 작품을 꺼내놓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저는 항상 틀 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며 "극장용 영화를 하다가 넷플릭스와 작업하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요즘은 유튜버랑 경쟁하고 싶어요. 저희 딸이 4학년인데 유튜브를 많이 봐서 같이 보면 진짜 재밌더라고요. 싸게 만들었는데도 재밌네? 나도 좀 싸게 못 하나. 그런 생각도 해요. 유튜버들은 자기 혼자 창작하잖아요. 영화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니까 경쟁의식 같은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계시록' /사진=넷플릭스
그래서 연 감독의 다음 작품은 독립영화의 형태를 취한다. 박정민, 신현빈이 출연하는 '얼굴'은 2억원대의 제작비로 만든 저예산 영화다. 그는 "아무에게도 손 벌리지 말고 아는 사람들과 유튜버처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다"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연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본인 작품을 저만큼 재밌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작품을 하고 '아, 이건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재밌게 보고 자주 돌려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면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되는 혹평과 호평 사이에서 연 감독은 어떻게 중심을 잡을까. "혹평에 대해 당연히 신경을 씁니다. 하지만 작품을 많이 하니 좋은 것 중 하나는 반응을 보면 미묘한 지점이 눈에 보여요. 혹평하는 분들이 제 작품 다 혹평할까요. 아니에요. 이건 좋아하는데 이건 싫어하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취향이 보여요. '염력'이 제 작품 중 평가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첫 작품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잘 됐으면 그쪽으로 더 갔을 수 있는데, 안되다 보니 그런 작품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어요. 전 키치한 형태로 '염력' 같은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