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로 집 사는 시대 왔다…일본 부동산 시장의 변화 [김용남의 부동산 자산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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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상상처럼 여겨진 질문이 이제는 현실이 됐습니다. 일본 부동산 시장이 암호화폐 결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디지털 전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사인 오픈하우스 그룹은 엑스알피(옛 리플), 솔라나, 도지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를 부동산 거래 결제 수단으로 공식 도입했습니다. 앞서 2025년 1월부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적용한 데 이어, 이번에는 암호화폐 결제 옵션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1997년 설립된 오픈하우스 그룹은 일본 내 주택 분양, 중고 주택 매매, 관리, 임대, 개발 등 종합 부동산 서비스를 제공한 대형 부동산 기업입니다. 연매출 1조엔(약 9조8000억원)에 달하며 도쿄를 비롯한 일본 주요 도시에 핵심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하와이까지 진출하며 글로벌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오픈하우스 그룹이 암호화폐 결제를 도입한 배경은 명확합니다. 부동산 거래의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국경을 넘는 거래에서 발생하는 결제의 장벽을 낮추겠다는 의도입니다. 암호화폐를 단순한 투기 수단이 아닌 실질적인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픈하우스 그룹은 이번 조치로 모든 주택, 콘도미니엄, 원룸 아파트 등 자사 보유 부동산 상품 전반에 암호화폐 결제를 적용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리플(XRP)의 도입은 해외 투자자를 겨냥한 전략적 결정으로 평가됩니다. 빠른 송금 속도와 낮은 수수료를 강점으로 내세운 XRP는 국제 투자자의 결제 편의를 높이는 동시에, 기존 금융망을 통한 거래에서 발생하는 복잡성과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일본 부동산 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일본은 ‘자금결제법’(Payment Services Act)을 통해 암호화폐 및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중개업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기업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암호화폐를 실물경제에 접목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부동산과 암호화폐의 결합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고급 콘도가 비트코인으로 거래됐고, 두바이의 대형 개발사 다막 프라퍼티 역시 공식적으로 암호화폐 결제를 도입했습니다. 미국 부동산투자신탁(리츠)인 프레시디오 프로퍼티 트러스트는 2021년부터 임대료와 관리비를 암호화폐로 받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는 아예 비트코인으로만 거래된 부동산 계약이 성사되기도 했으며, 일부 국가들은 암호화폐 투자자에게 세금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의 가장 큰 장점은 복잡하고 비용이 큰 국제 송금 절차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암호화폐를 활용하면 별도의 환전이나 송금 절차 없이 실시간으로 부동산 거래가 가능해지며, 블록체인 기반의 투명한 거래 기록은 사기 위험을 낮추고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습니다. 암호화폐 특유의 높은 변동성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중시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별로 상이한 법적·세무적 규제 역시 실질적인 거래 확산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RP의 송금 효율성, SOL의 스마트 계약 기능, DOGE의 대중성 등 암호화폐가 지닌 각기 다른 장점들은 부동산 거래 구조를 보다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픈하우스의 이번 시도는 전통적인 부동산 산업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해 나가는 상징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결합된 이 새로운 접근 방식은 단순한 결제 수단의 확장을 넘어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일본 부동산 시장에서 시작된 이 변화의 물결은 전 세계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픈하우스가 던진 이 도전은 부동산과 암호화폐의 융합이 만들어낼 무궁한 기회를 보여주는 신호탄입니다. 디지털 경제의 흐름 속에서 부동산 산업이 어떻게 진화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용남 글로벌PMC(주)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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