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과 호가가 부른 채문희의 눈물 '호가십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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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종영의 아트차이나2025년 3월 1일과 2일, <호가십팔박(胡茄十八拍)>이 중국 베이징의 국가대극원 오페라극장에서 무용극으로 상연됐다. <호가십팔박>은 채문희라는 여인이 자기 인생의 비통함을 읊은 운문시에 북방인들이 곡조를 붙여 대나무 피리인 호가(胡茄)로 연주됐고, 그 후 당나라 때에 현악기인 고금(古琴)으로 연주됐다. 이번 작품은 2024년 내몽골 얼도스 공연을 시작으로 베이징을 포함해 중국 10개 도시에서 순회공연 중이다.
중국 베이징의 국가대극원에서 열린 무용극
동한 말에 동탁(董卓), 이각(李傕) 등이 일으킨 반란을 틈타서 중원을 침략한 흉노에게 약탈당해 북방으로 끌려갔는데, 흉노 좌현왕(左賢王) 유표(劉豹)의 부인이 돼 아들 둘을 낳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조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황량한 북방 땅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다. 12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중원의 북방을 통일한 조조(曹操)는 친구의 딸이기도 한 채문희의 재능을 아껴 흉노에게 거금을 주고 그녀를 데려와서는 동사(董祀)라는 고향 사람에게 다시 시집을 보내주었다.
이민족에게 끌려가서 오랑캐 땅에서 살 때는 그렇게도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였으나 막상 돌아와 보니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혈육인 두 아들을 잊을 수가 없어 또다시 고통스럽게 번민하는 마음이 된다. 그녀는 <호가십팔박>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두고 온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심정을 노래한다. 채문희가 평생 남긴 작품은 <채문희집(蔡文姬集)>, <호가십팔박>, <비분시(悲憤詩)>가 있는데, 이 중 <호가십팔박>과 <비분시>가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번 공연은 채문희의 내면적인 몸부림과 감정의 변화를 무용극의 형식으로 섬세하게 그려내어 동작 하나하나에 희로애락이 전달되도록 했다. 음악은 '호가십팔박자'를 기조로 하는 호가 음악의 독특한 멋이 현대 음악적 요소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고풍스러우면서도 신선감이 묻어나는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감정의 섬세한 표현과 리듬의 기복 변화를 중시해 편곡함으로써 음악과 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이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흉노의 호가 소리가 중원의 고금 곡조로 바뀌면서 채문희의 사무치는 애한은 절정에 달한다. 채문희 역할을 맡은 주연 순치우위에(孫秋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슴에 가득 찬 채문희의 감정적 갈등으로 깊이 들어가는, 쉽지 않은 도전을 하게 됐다. 채문희의 이야기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실상 그녀의 내면은 더할 나위 없이 강인했다는 것을 모든 동작과 눈빛에 녹여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박종영 한중연문화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