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A행동규범, 한국 노동법과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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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인권경영이란 '기업이 인권침해를 일으키거나 연루될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인권침해가 일어난 때에는 사후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기업의 인권존중 문화를 정착시키고 인권 중심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하는 경영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인권경영의 핵심은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라 할 수 있는데, 인권실사는 기업이 끼치는 부정적 인권영향을 식별하고 방지·완화하는 절차로, 인권영향평가 실시·결과를 기업활동 전반에 반영·실천하는 조치, 해당 조치의 효과성 모니터링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권실사를 할 때에 다양한 글로벌 기준이 존재하는데,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UN의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 ILO 협약(ILO Conventions),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 행동규범(Code of Conduct) 등이 있다.
이 중 인권실사에서 많이 사용되는 RBA 행동규범은 2004년 Dell, HP, IBM 등 8개의 전자산업분야 선도기업들이 설립하여 현재 23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RBA가 만든 행동규범이다. RBA 행동규범은 회원사의 공급업체 역시 RBA 행동규범을 받아들이고 이행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RBA 행동규범은 5개의 섹션(A 노동 / B 안전보건 / C 환경 / D 윤리 / E 관리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고, 노동 섹션에서는 1)강제 노동 금지 2)연소 근로자 3)근로시간 4)임금 및 복리후생 5)차별 및 괴롭힘 금지와 인도적 대우 6)결사 및 단체교섭의 자유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한국 노동관계법령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관계법령보다 글로벌 기준의 규정 범위가 넓다. 예를 들어, RBA 행동규범 노동 섹션은 노동관계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과 유사하고, 안전보건 섹션은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성이 있으나, 나머지 환경, 윤리, 관리 시스템 섹션은 노동관계법령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관리 시스템 섹션 중 인권과 관련성은 있으나 노동관계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항을 벗어나는 내용으로 1)인권 정책 선언문 작성 및 공개 2)기업의 운영과 관련된 심각한 인권 영향의 위험을 포함하여 법적 준수, 노동 관행 위험을 식별하는 프로세스를 채택하거나 수립 3)성과 개선을 위한 목표, 대상,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그러한 목표 달성에 대한 기업의 성과 진척도를 주기적으로 평가 4)정책, 절차, 개선 목표를 실행에 옮기고 관련 법률 및 규제 요건을 준수하기 위한 관리자와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수립(단, 성희롱 예방교육,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개인정보보호 교육은 한국법상으로도 의무교육임) 5)정책, 관행, 기대 사항 및 성과에 관한 확실하고 정확한 정보를 직원과 공급업체 및 고객에게 전달하는 절차 수립 6)근로자, 그 대리인 및 기타 이해관계자와의 지속적인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프로세스 수립(단, 한국법상으로도 고충처리위원회 설치의무는 존재) 7)RBA 행동규범의 요구 사항을 공급업체에 전달하고 공급업체가 이를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절차 수립 등이 있다.
둘째, 노동관계법령은 적용되지 않지만, 글로벌 기준은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1주에 61시간을 근로하였을 경우, 근로기준법상으로는 근로시간에 대한 제한이 없으므로 위법이 아니지만, RBA 행동규범(주당 60시간 초과 금지) 위반에는 해당하게 된다. 또한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라 농림수산업 등의 경우 근로시간에 대한 제한이 없지만 RBA 행동규범의 근로시간에 대한 제한은 적용된다.
셋째, 노동관계법령과 상충되는 내용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제95조는 감급의 제재가 허용된다는 전제 하에 그 감액은 1회의 금액이 평균임금의 1일분의 2분의 1, 총액이 1임금지급기의 임금 총액의 10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반면, RBA 행동규범은 “징계조치로 급여 삭감을 실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넷째, 노동관계법령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RBA 행동규범은 “기업은 임금, 승진, 보상, 교육 기회 등 채용 및 고용 활동에서 인종, 피부색, 연령, 성별,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또는 표현, 민족 또는 출신 국가, 장애 유무, 임신 여부, 종교, 정치적 소속, 노조 가입 여부, 은퇴군인 연금 자격, 유전정보 기밀 또는 혼인 여부에 근거해 근로자를 차별하거나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여, 인종,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에 근거한 차별도 금지하고 있다.
다섯째, 미준수시 불이익이 다르다. 노동관계법령 위반의 경우 과태료, 형사처벌, 민사상 책임 등이 비교적 명확한 반면, ESG 인권경영 관련 글로벌 기준 미준수시 불이익은 대체로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가능성 및 정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이 적용되는 경우라면 벌금 부과 가능성이 있고, 거래상대방의 방침에 따라서는 거래관계 유지가 불가한 경우도 있으며, 투자자 방침에 따라서는 투자 유치가 불가한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아무런 불이익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백종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