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총칼 없이 中과 전쟁 치르겠다는 韓

김은정 베이징 특파원
“인력도 빼내고 예산도 줄이더니 갑자기 중국 실태를 심층 조사하랍니다.” 요즘 중국에 있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 관계자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올초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세계를 뒤흔든 뒤 중국을 바라보는 각국의 시선이 확 달라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남의 기술이나 베끼는 카피캣’ ‘저가품만 쏟아내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수식어로 중국을 치부하던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턱없이 부족한 현지 예산

중국 기업 BYD는 미국 대표 전기차 기업 테슬라를 누르고 3년 연속 전기차(하이브리드차 포함) 세계 판매 1위에 올랐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로봇 개, 드론 등 주요 기술 산업에서 어느새 중국은 선두 자리를 꿰차고 있다. 미국 등에 한참 뒤처졌다고 여겨지던 AI와 첨단 반도체 부문마저 앞설 태세다.

중국의 기술력과 재편된 산업 구조 파악에 손 놓고 있던 정부는 부랴부랴 현황 파악에 나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부가 가장 먼저 깎은 것 중 하나는 중국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이다. 중국 현지에 있는 한 연구기관은 팬데믹 이전보다 R&D 예산이 65% 삭감됐다. 현지 실태 조사와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은커녕 사무실 운영과 인건비 충당마저 어려워졌다. 계속된 요청과 읍소로 삭감된 예산의 절반 정도를 회복했지만 적극적인 활동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 내 제대로 된 한국 기업 데이터 축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별도 총괄 창구가 없어 정부 기관, 은행, 중국한국상회 등에 산발적으로 데이터가 흩어져 있다. 예컨대 대기업의 2~3차 벤더(부품 납품 기업)가 폐업하거나 중국 기업에 매각돼도 알음알음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 구조다.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 논의가 꾸준히 불거졌지만 예산 문제로 번번이 무산됐다.

연구기관에선 소장으로 불리는 책임자와 현지 직원 한두 명이 업무를 떠안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요청 자료, 각 정부 부처의 발주 보고서 등 떨어지는 행정 업무만 처리하기도 버거울 지경이다. 법인카드조차 없어 네트워크 확대를 위해 사비를 쓰는 일도 부지기수다. 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중국 공무원이나 연구기관 직원들을 만날 때 경비 처리가 쉽지 않아 식사 대접이나 작은 선물을 사려고 개인 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 못 키우는 구조

물리적인 시간도 재정적인 지원도 관시(關系)를 만들기엔 역부족이다. 관시는 한국에선 쉽게 인맥으로 이해되지만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인맥과는 다르다. 단순히 소속과 서열만이 아니라 알고 지낸 시간, 깊이, 신뢰 등에 더 무게를 둔다. 당연히 인맥 쌓기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관시가 바탕이 돼야 중국의 ‘진짜 모습’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다. 적(敵)을 알아야 제대로 된 전쟁 전략을 세우듯 중국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국 산업을 지키고 경쟁력을 높일 대응 전략도 수립할 수 있다.

정권에 따라 물갈이되고 짧게는 3년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돈도 없는 한국인에게 관시의 문을 열 중국인은 없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건 총도 칼도 없이 전쟁터에 나서라는 꼴이다.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한 채 AI도 반도체도, 제조업도 밀리면 통탄하게 될 건 결국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