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물 건너간 연금 구조개혁

구조개혁 실종된 연금개편안
근본 해결책 외면하는 야당

유경준 前 통계청장
지난주 여야 합의로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존 보험료율 9%를 13%로, 소득대체율(평생 평균소득 대비 은퇴 후 받는 연금의 비율)은 40%에서 43%로 올리는 연금 모수개혁이 주 내용이다. 부대조건에는 지급보장 명문화 조항을 넣고, 출산이나 군 복무를 하면 보험료 납부 없이 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지난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을 진행해 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번 안에서도 연금개혁의 본질인 구조개혁(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 또는 연계해 노후생활 보장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또다시 무산돼 실망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즉, 이번 안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기존 안과 별반 차이가 없는 기득권 보호에 치중한 안이라는 점이 기본적인 문제다. 이번 모수개혁을 하고 난 뒤 다시 구조개혁을 합의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은 정말 순진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일단 국회를 통과한 13%·43% 안을 기준으로 인상된 보험료를 40년간 계속 내야 하는 사람은 청년층인 신규 가입자들이고, 오른 소득대체율로 연금을 받는 사람은 그동안 보험료를 적게 납부해 온 기득권자들이다. 개혁이란 기득권 제약이 기본인데 이번 개편안은 개혁의 이런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지급 보장은 명문화했는데 그와 대칭적 제도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재정의 자동안정화 장치는 빠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38개국 중 3분의 2 정도가 채택한 자동안정화 장치는 인구나 경제 상황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해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인데 아예 빼 버린 것이다.

출산과 군 복무 크레디트 부분도 문제인데 개편안에는 재원 조달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크레디트를 위한 추가 재정 소요는 향후 70년간 약 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에서 재정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기금 고갈 시점이 기존 예상치보다 8∼9년 정도 더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금재정추계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4.5%보다 1%포인트 높은 5.5%의 기금 운용 수익률을 적용한 결과를 이용해 미래 연금재정 상황을 분홍빛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금 운용을 잘해서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최근 높은 물가 상승률에 따라 명목이자율 상승이 기금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면 이는 연금의 실제 가치를 낮추는 일에 불과하다. 따라서 무엇을 사용하든 연금 고갈 연도를 겨우 10년 내외 연장하는 도토리 키재기식 안을 개혁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개편으로 향후 연금 구조개혁은 더욱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그 이유는 지난 37년 동안 한국에서 구조개혁이 사실상 없었으며, 연금개혁을 주도해 온 더불어민주당의 개혁안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의 역사는 1998년 김대중 정부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보험료율을 3%에서 9%로 인상하고, 70%인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춘 것과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기초연금을 도입한 것이 전부다.

문재인 정부 때는 구조개혁은 아예 없는 모수개혁의 네 가지 안을 가지고 변죽만 울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민주당 연금개혁안에는 ‘일관되게’ 구조개혁안은 아예 없었으며, 그리하여 연기금이 고갈되면 국가재정(세금)을 투입하는 전형적인 표퓰리즘이 내포돼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