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관세폭탄에 '美 예외주의'가 무너진다

불확실성 확대에 美경제 주춤…글로벌 자금도 이탈

달러·증시 동반 부진
달러지수 1월 109→이달 104로
S&P500 연초 대비 3.6% 하락
달러 매도 + 증시 조정은 이례적

유럽·中으로 '머니무브'
유럽주식 ETF로 지난달 22억弗
中 부양책효과 … 항셍지수 18%↑
월가도 "美예외주의 의구심 커져"
나 홀로 독주를 이어가던 미국 경제와 증시가 주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전방위 관세 전쟁에 돌입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증시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월가에선 올해 초만 해도 ‘미국은 다르다’는 ‘미국 예외주의’가 득세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미 달러화도 약세를 보이고 미국으로 유입되던 글로벌 자금도 유럽과 중국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미국 예외주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미국 경제 상황은 각종 지표에서 확인된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4일 한때 103.95까지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 20일 109.35와 비교하면 4.9% 하락했다. 트럼프 2기 출범 전의 강달러 기조가 깨진 것이다. 반면 한때 유로당 1달러가 깨질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며 약세를 보이던 유로화는 강세다. 최근 유로당 1.8달러대로 올라섰다.

주식시장은 명암이 더 엇갈린다. 미국 증시 대표 지수인 S&P500지수는 올 들어 지난 21일까지 3.6% 하락했다. 지난해 23% 넘게 올랐지만 올해는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반면 유럽 지역 시가총액 상위 600개 기업으로 구성된 스톡스유럽600은 올 들어 8.3% 상승했고 홍콩 항셍지수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18.1% 뛰었다. 지난해 전 세계 증시를 주름잡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메타 등 ‘매그니피센트 7’도 올해는 힘을 못 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달러화와 미국 증시가 동반 약세를 보인 것은 최근 25년 새 거의 없던 일이라고 보도했다.

설상가상으로 자금 시장에서도 ‘탈미국’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유럽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해도 매달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올 들어선 1월 2억달러, 2월 22억5000만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에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까지 겹친 결과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거시경제 지표도 악화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을 이유로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 경제는 대규모 재정 확대에 힘입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최근 12년간 5000억유로(약 790조원)에 이르는 정부 재정을 인프라에 투자하고 국방비를 사실상 무제한 증액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유럽 방위에서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인 데 따른 조치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는 재정 확대가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이유로 독일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9%에서 1.5%로 높여 잡았다.

미국 예외주의를 강조하던 월가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주 투자보고서에서 “최근 몇 주 동안 미국 예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1970년대 초 이후 가장 빠른 미국 증시 조정이 촉발됐다”고 평가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