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고갈 8년 늦춰진다…"위험자산 비중 75%로 높여 공격 운용"

'3500조 공룡' 국민연금
주식·대체투자 확 늘린다

모수개혁으로 세계 최대 연기금

기금 규모 두 배로 불어날 듯
정부 "위험자산 비중 10%P 상향"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13%와 43%로 인상하는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이 지난 20일 국회를 통과해 연금 적립 기금이 2050년께 약 3500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조사됐다. 당초 2041년께 1777조원에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 기금 규모가 두 배가량으로 커지고 적자 전환 시점이 10년 정도 늦춰진 것이다. 국민연금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연기금으로 성장해 국내외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더욱 막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주식·대체투자 등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최대 10%포인트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준 포트폴리오’ 제도를 도입하면서 위험자산의 목표 비중을 65%로 설정했는데, 이를 최대 75%로 높이겠다는 의미다.

적자 전환 및 기금 소진까지 시간을 번 데다 운용 규모도 커져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위험을 더 감수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개혁으로 기금 고갈 시점은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가량 늦춰진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는 장기로 투자할 수 있는 기간에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기금 고갈 시점을 더 늦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세운 목표대로 운용 수익률을 4.5%에서 1%포인트 더 올리면 정점에서의 기금 규모는 3500조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기금을 2071년까지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금 규모가 확대돼 국내 주식 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5년간 300조원 넘는 돈이 국내 증시에 투입될 것으로 관측된다.

3500조 굴리는 연금공단…'글로벌 1위' 운용기관으로
내년 기금 추가 수입 2조 늘어…"진정한 장기투자 여건 마련"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적립금은 1212조원이다. 일본 공적연금(2150조원), 노르웨이 국부펀드(2139조원)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이다. 지난 20일 국회를 통과한 모수개혁안이 시행되면 국민연금은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늘어 수년 안에 세계 최대 연기금으로 성장한다. 그만큼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해지는 셈이다. 이번 개혁으로 국내외 자산운용업계가 들썩이는 이유다. 다만 국민연금이 덩치에 걸맞은 기금 운용 체계를 갖췄는지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3500조원 초대형 연기금

24일 한국경제신문이 국민연금 중·장기재정전망을 토대로 향후 10년간 국민연금 총수입·총지출 전망을 재집계(인구 증감, 금리 변동 제외)한 결과 당장 내년부터 약 6조4300억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이 내년에는 9.5%로 높아지면서다. 소득대체율은 내년에 바로 40%에서 43%로 인상돼 내년도 총지출은 기존 대비 4조5300억원가량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2조원가량이 기금에 추가로 적립되는 셈이다.

보험료율은 매년 0.5%포인트씩 올라 2033년 13%로 고정되는데, 이를 반영하면 10년 뒤인 2035년께에는 개혁 효과가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2035년 총수입은 개혁 전 예상한 156조780억원보다 44% 증가한 225조4300억원에 달하는 반면 총지출은 117조8600억원으로 인상 전보다 8조원가량 늘어나는 데 그친다. 이에 따라 기금 수지가 적자로 전환되는 2050년까지 적립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35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국내 주식시장에 315조원

운용업계는 세계 최대 연기금으로 성장할 국민연금의 운용 계획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기금 포트폴리오는 해외주식 35.5%, 국내채권 28.4%, 대체투자 17.1%, 국내주식 11.5%, 해외채권 7.3% 비중으로 투자됐다. 지난해 5월 발표한 ‘2025~2029년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올해 말 목표는 해외 주식 35.9%, 국내 채권 26.5%, 국내 주식 14.9%, 대체투자 14.7%, 해외 채권 8.0%다.

2029년에는 해외 주식을 42%까지 늘리고 국내 주식 비중은 13%로 줄일 계획이다. 대체투자는 15% 규모인데, 이 중 해외 비중이 80%에 달할 전망이다. 해외 운용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줄이고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금운용본부의 글로벌 투자 역량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주식은 비중을 줄여도 이번 개혁안으로 기금 규모가 불어남에 따라 주식 보유 규모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 기금이 3500조원에 달하고 국내주식 비중은 13%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연금이 보유할 국내주식은 455조원어치다. 작년 말 기준 연금이 들고 있는 국내주식은 139조7000억원어치다. 향후 약 25년간 연금이 315조원어치 가까운 국내주식을 더 사들일 것으로 추산되는 대목이다. 그만큼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최대 10%포인트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위험자산 비중을 65%로 잡은 이유 중 하나가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 지출액이 많은 연금 수입 적자 전환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며 “장기 투자자답게 투자하지 못하던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금 고갈 시기, 수지 균형이 깨지는 시기가 점점 늦춰진다면 기존 65%이던 위험자산 비중을 70~75%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안/남정민/민경진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