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버킨백부터 로저 비비에 구두까지...파리의 동묘시장 '살롱 뒤 빈티지'

[arte] 정연아의 프렌치 앤티크 보물창고

파리 '빈티지 페어'

빈티지는 새로운 삶의 방식,
'슬로우 패션'은 친환경적인 행위
로봇 공학, 인공지능(AI), 가상 현실 등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 지금, 우리는 왜 옛 것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을까?

최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스마트폰 신기종이 소개되고, 몇 시간 혹은 몇 주 걸려 하던 일을 AI의 도움으로 버튼 하나만 누르면 해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편, 자연으로의 귀환과 디지털 디톡스 같은 '슬로우 문화'가 탄생하면서 앤티크, 레트로, 빈티지, 올드 스쿨, 리바이벌 같은 단어들은 패션 및 인테리어, 리빙 디자인 등 우리 생활 속에 널리 퍼져있다.
럭셔리 빈티지 백 Kelly, 에르메스 / 사진. © 정연아
럭셔리 빈티지 백 Kelly, 에르메스 / 사진. © 정연아
파리 빈티지 페어, 살롱 뒤 빈티지(Salon du Vintage)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구는 패션 매장, 박물관,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 게이바 등이 밀집된 핫 플레이스이다. 이곳은 힙한 파리지엥들과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지난 주말, 마레 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피에르 가르뎅(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박물관'이었던 건물 앞에서 빈티지 페어 '살롱 뒤 빈티지(Salon du Vindage)'가 열렸다. 행사장 안에는 가족, 친구, 연인 등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보물을 찾듯 구석구석을 뒤지고 있었다. 1만5000원의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파리에 빈티지 패션과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게 했다.

살롱 뒤 빈티지는 아페르 콩끌뤼(Affaire conclue)라는 앤티크 & 빈티지 미니 경매 TV프로그램 방송인이자 빈티지 전문가 '로랑 조르노(Laurent Journo)'가 기획한 행사다. 지난 10년간 마레 지구의 까로 뒤 템플(Carreau du Temple)에서 열리다가, 작년에 피에르 가르뎅 박물관 건물을 인수하면서 작년 11월부터는 이곳에서 열린다.

살롱 뒤 빈티지는 파리뿐만 아니라 보르도, 투르, 안시 등 프랑스 지방 도시에서도 매년 열려 빈티지 애호가들에게 빠질 수 없는 연간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빈티지 페어 참가자들은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상품몰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 직업 판매자들로 특별히 선정된 유니크하고 아름다운 가구, 디자이너 의류, 가죽 제품, 보석, 음반, 클래식 카 등을 선보이고 있다.
'Salon du Vintage' 포스터. [좌측부터] 투르(Tours) 3월, 보르도(Bordeaux) 4월, 안시(Annecy) 5월 / 사진출처. © Salon du Vintage
이번 '살롱 뒤 빈티지 파리'는 100% 패션 에디션으로 총 1200m² 공간에 60개의 참가 부스가 설치됐다. 지하에는 빈티지 시계 코너가 있고, 1층 중앙에는 셀린느 회고 전시와 인터넷 라이브 판매를 진행한다. 1층 일부 그리고 2층과 3층에서는 의류와 액세서리를 판매한다.

세련되고 복고풍 감성이 넘치는 빈티지 의류와 액세서리들을 선보였는데, 주말 이틀 동안 1만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빈티지, 중고 패션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빈티지 패션 판매자들은 단순히 보유하고 있는 의류와 액세서리를 모아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최신 유행 경향에 맞춰 판매할 상품을 디자인과 색상별로 구성해 시대 흐름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샤넬, 입생로랑, 디올, 에르메스 하우스의 빈티지 컬렉션, 때로는 한정판의 희귀하고 다양한 빈티지 작품들이 전시돼 패션 애호가, 수집가 및 복고풍 트렌드를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행사는 100% 패션, 100% 럭셔리 에디션이어서 독특하고 탐나는 옷, 가방, 액세서리들이 많았지만, 가격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였다. 특히 에르메스 버킨과 켈리 가방, 샤넬 재킷과 가방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투자 대상이 돼 고가에 판매되고 있었다.
샤넬 재킷과 명품 가방들 / 사진. © 정연아
빈티지 아이템의 가격대가 높다는 것은 진품 감정을 받았거나, 브랜드 라벨이나 디테일을 봤을 때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가방 디자이너 지인이 파리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인 쌩 뚜왕(Puces de Saint Ouen)에서 럭셔리 브랜드 빈티지 가방을 작업용으로 5개 구매했다. 한국에 돌아가 꼼꼼히 확인한 결과 5개 중 2개가 진품이 아니었다고 전해줬다. 구매 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허접한 마감 처리와 라벨에 잘못된 오타 등이 자세히 보니 보이더라고 했다. 고가의 빈티지 상품은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살펴보고, 만약을 위해 판매처의 연락처와 영수증 등을 꼭 보관하기를 추천한다.

샤넬 백, 입생로랑 재킷, 꾸레쥬 메신저 가방과 잠바, 파코라반 핸드백, 오메가와 롤렉스 시계 및 선글라스, 에르메스 스카프, 로저 비비에 구두 그리고 하나에 3만원씩 하는 팬시 액세서리… 복고풍 감성의 빈티지 매력에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Salon du Vintage 페어 모습 / 사진. © 정연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대형 유리 지붕 아래에는 전직 모델이자 패션 빈티지 업계 최고 수집가 중 한 명인 아누슈카(Anouschka)의 협찬으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셀린느의 1970년대 컬렉션 회고전이 열렸다. 행사장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빈티지 가방, 의상 등을 판매했다.

라이브 스트리밍 쇼핑 플랫폼인 왓낫(Whatnot)을 통해 셀린느 트리옹프 백이 1500원(1유로)을 시작으로 온라인 경매가 진행됐다. 이 가방은 빈티지 평균 가격이 350만~450만원 정도인데 끝까지 보지 못해 얼마에 낙찰됐지는 모르겠다.
셀린느 컬렉션 회고전 앞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 판매 / 사진. © 정연아
지속 가능한 패션, 슬로우 패션

빈티지 패션 아이템 구매는 자신이 직접 사용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투자 목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친환경적 행위이기도 하다. 빈티지 시장의 활성화는 환경파괴의 큰 주범 중 하나인 패스트 패션 산업에 대응해 지속 가능한 패션, 즉 '슬로우 패션'을 실천하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치솟는 물가에 프랑스의 젊은 세대는 중고 거래, 나눔, 물물 교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따라 슬로우 패션 정책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된 것이다.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