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어 뮤지컬 '원스'도 번역한 황석희 "원작자 위트와 표현 살리는 게 임무"

영화 이어 뮤지컬 '원스' 번역 맡아
"좋아하는 음악이라 잘하고 싶었다"
"포크 장르를 굉장히 좋아해요. 뮤지컬 '원스'의 테마 자체가 아이리시 포크인데,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이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뮤지컬 '원스'의 대사와 노래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 황석희는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작품 번역을 맡은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영화계 유명 번역가인 그는 2007년 개봉한 동명 영화에 이어 오는 5월 31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원스도 우리말로 번역했다. 이번 공연은 2014년 초연 이후 11년 만이다.
뮤지컬 '원스'의 황석희 번역가./사진=신시컴퍼니
뮤지컬 '원스'의 황석희 번역가./사진=신시컴퍼니
그는 "제가 번역한 영화여서 뮤지컬도 같이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며 "영화 원스는 허술한 면이 있는데 뮤지컬로 바뀌면서 소모적이었던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고 그들이 만나 시너지를 표현하는 등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연과 재연의 가장 큰 차이는 원작의 유머가 살아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버스킹의 도시'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원스는 음악이 핵심인 뮤지컬이다. 거리의 뮤지션 '가이(Guy)'와 체코 이민자 여성 '걸(Girl)'이 음악을 매개로 깊어지는 관계를 그린다. 모든 배우가 기타, 아코디언, 첼로 등 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무대를 누비는 모습도 다른 뮤지컬에선 찾아볼 수 없다. "연습실에서 봤을 때는 엄청 예쁜 조약돌이 열댓개가 서로 부딪히며 빛을 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로 공연장에서 보니 훨씬 더 멋있었어요. 연습 때보다 다듬어졌는데 느껴지는 에너지는 무대에서 더 컸어요."
뮤지컬 '원스'의 한 장면. 배우들이 오케스트라 대신 각자 악기를 연주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사진=신시컴퍼니
뮤지컬 '원스'의 한 장면. 배우들이 오케스트라 대신 각자 악기를 연주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사진=신시컴퍼니
황석희는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친 경험을 살려 이번 번역의 완성도를 높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기타를 치고, 20대 때 밴드 활동을 10년 했어요. 버스킹도 4년 했죠. 기타 음악을 좋아하고, 익숙하기도 해서 여러모로 마음이 편한 작품이었어요. 한두 곡은 직접 기타를 치고 녹음해서 가이드를 드렸어요. 원래는 악보에 있는 음표 위에 글자를 올리는 방식인데, 포크 음악은 그걸 보면서 부르는 게 더 어려워서 녹음을 했죠. 포크 음악에서 쓰는 어미나 표현에 집착하는 편인데, (번역에서) 그런 걸 살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번역본을 전달하는 것에서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배우들이 대사와 가사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말하면 이를 고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하는 건 2~3주 안에 끝났는데 다듬고 수정하는 게 오래 걸렸다"면서 "음악감독, 연출과 상의해야 하고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이견도 조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원스'의 한 장면. 배우 윤형렬(가이 역)과 이예은(걸 역)이 함께 연주하고 있다./사진=신시컴퍼니
황석희는 가장 만족도가 높은 자신의 번역 곡으로 주인공 가이의 아버지 '다(Da)'가 부른 '라그랑 로드(Ragland road)'를 꼽았다. "개인적으로 한국 포크 음악의 계보에 있는 이정열 배우의 팬입니다. 배우님이 다 역할을 맡는다는 걸 듣고, 멋있게 부르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덕의 오기랄까요. 이정렬 배우님이 어떤 발음을 멋있게 내는지도 다 알고 있어서 그런 음절을 라그랑 로드에 드문드문 넣었어요. 제가 듣고 싶어서 그랬죠.(웃음)"

원스의 가장 유명한 곡인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는 영어 원문을 직역하는 대신 뉘앙스를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번역했다. "'falling slowly'나 'sinking boat'와 같은 가사를 천천히 스며든다, 배가 가라앉는다로 그대로 번역하기엔 이상해서 의미를 버리고 뉘앙스로 담아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배가 가라앉는 이미지를 놓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 원문 가사의 거의 모든 부분을 살려 넣었습니다."
뮤지컬 '원스'의 황석희 번역가./사진=신시컴퍼니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번역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번역가는 원작자가 쓴 표현과 위트를 관객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옮기는 것이죠. 황석희가 번역한 작품에는 원작자가 의도한 뉘앙스나 정서가 많이 녹아있을 것이라고 관객들이 기대하면 좋겠습니다."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