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숨 쉰다, 친절한 커피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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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진의 공간의 감각
죽어가는 도시 속
커피 한 잔이 주는 환대
은평구 신사동 '파브스 커피'


도시 계획에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공간의 시차를 없애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이다. 낯선 사람들을 가려내고 구분해 내는 일은 그들에게 적개심만을 일으킬 뿐이다. “도시라는 의미의 공중 생활은 없고, 각기 정도가 다른 사생활의 연장만 있다”(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p. 99)면 도시의 치안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용도와 연식이 각기 다른 건물이 가로를 채우고 그곳에 모든 시간대에 걸쳐 사람들이 거닌다면, 인위적인 계획이 없어도 상호 간의 자연스러운 감시를 끌어낼 수 있다. 낯선 사람을 배척하기보다 친절로 맞는다면 범죄를 예방하기도 용이할 것이며, 슬럼화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된다. 시대를 내다본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은 훗날 도시 계획에 근간을 이루는 CPTED(범죄예방환경설계)의 원형이 되기도 한다.
미국 대도시의 죽어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60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같은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계획된 방식으로 수용되기 위해 가격표가 붙여지며, 가격표가 붙여진 채 분류된 각각의 인구 집단은 자신들을 에워싼 도시에 대해 의심과 불안을 키우며 살아간다.”(같은 책, p.21) 외부와의 차단을 강화하는 시스템은 대단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낯선 이에 대한 친절은 파브스 커피의 신정주, 이준선 대표를 커피의 세계로 이끌었다. 파브스 커피의 탄생은 웨스트버지니아 모건타운에 위치한 카페 ‘더 그라인드(The Grind)’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준선의 유학길에 동행한 신정주는 남편이 학교에 간 사이 더 그라인드에서 일을 도왔다. 이방인이었던 자신을 보듬어준 곳이자, 동네의 모든 사람이 한데 모이는 사랑방 같은 카페였다.
카페는 부부가 함께 달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20대를 토목공학 수자원 연구를 해온 이준선은 웨스트버지니아의 생활에 이어 미네소타에서의 박사과정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박사과정이 시작되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같이 해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카페 운영을 택했다.
그렇게 이준선의 연구 대상은 ‘하천의 흐름’에서 ‘커피 로스팅’으로 바뀌었고, 신정주의 일터는 모건타운에서 은평구 신사동으로 바뀌었다.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 일이었던 만큼 둘은 신중했다. 후보로 선정된 카페 오픈 장소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카페가 문을 연 지금의 장소 앞에서는 일주일간 유동 인구를 체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큰 무기인 ‘낯선 이들에 대한 환대’가 준비돼 있었다. 주거 밀집 지역이라는 특성상 시간대별 유동 인구 격차가 컸지만, 카페에 단골손님이 늘어나니 그 격차는 점차 줄어들었다. 덩달아 오래된 가게들에도 활기가 돌았다. 낯선 사람들이 거리의 빈 시간과 공간을 채운 덕분이었다. 구청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를 포착해 주거환경개선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가게도 문을 열어 거리에 열기를 더하자, 계절과 시절에 상관없이 거리가 북적였다.
오래된 동네의 흔적을 전부 지우고 낯선 사람들을 몰아내는 지금의 재건축 시스템은 과연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을까? 부동산 가치에 매몰된 사람들은 자산을 지키기 위한 담장을 더 높게 세우고 싶어 한다. 생명처럼 숨 쉬는 도시는 누군가의 일괄적인 계획으로, 특정인들을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구획으로 갈라지며 조금씩 망가진다. 지금이라도 빗장을 풀고 낯선 이의 발걸음을 반긴다면, 어느 건축가나 도시 계획가의 이상향처럼 여겨진 평화로운 도시의 모습이 꽃을 피울 것이다. 어느 주말 한낮의 파브스 커피에 모인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는 모습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