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구조조정 시장 확장세…한국도 기회 많아"

세계 최대 로펌 레이텀앤왓킨스 인터뷰

유럽이 가장 활발한 구조조정 시장
사모대출 시장 성장 주목
韓, 챕터11 제도 적극 수용
세계 최대 로펌 레이텀앤왓킨스의 구조조정 파트너 변호사들이 한목소리로 "구조조정의 세계는 흥미진진하고 기업과 채권자 모두에 기회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하워드 램(홍콩), 애덤 골드버그(미국), 제시카 워커(영국) 변호사는 최근 홍콩에서 열린 기업 도산 전문 인솔(INSOL) 콘퍼런스 참석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했다.


부채관리가 구조조정 핵심으로


골드버그 변호사는 지난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가장 활발한 구조조정 시장은 유럽"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비용 급등이 특히 낮은 에너지 가격으로 수혜를 봤던 독일 산업재 기업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에선 통신·미디어·엔터테인먼트·에너지 분야와 자동차 협력 업체들의 구조조정이 활발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2~3년 사이 부채관리(Liability Management)가 기업 구조조정 트렌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골드버그 변호사는 "거래 유형, 구조, 방식, 달성하는 수준은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계약서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대출 기관들은 신용 보호를 위한 조항을 계속 넣고 있어 상황별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워드 램 레이텀앤왓킨스 파트너 변호사(홍콩)가 이달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레이텀앤왓킨스 제공
하워드 램 레이텀앤왓킨스 파트너 변호사(홍콩)가 이달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레이텀앤왓킨스 제공
램 변호사는 "법원의 회생절차 이전에도 라이어빌리티 매니지먼트 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며 "챕터11 이전에 기업들이 운전자본 한도 확보, 최우선순위 대출 등이 필요하며, 기한 대출, 리볼빙, 향후 조달약정 등으로 유연한 채무 구조를 만들어 신규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회생법원, 미국 챕터11 제도 수용


최근 서울회생법원은 소기업 회생절차에 기업인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종합적 고려법'을 도입하는 등 미국 챕터11의 새로운 트렌드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골드버그 변호사는 "챕터11의 원칙은 구조조정을 함에 있어 채무자와 이사회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덤 골드버그 레이텀앤왓킨스 파트너 변호사(미국 뉴욕)가 이달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레이텀앤왓킨스 제공
애덤 골드버그 레이텀앤왓킨스 파트너 변호사(미국 뉴욕)가 이달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레이텀앤왓킨스 제공
워커 변호사는 "코로나 기간 소기업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2020년 6월 미국의 DIP(Debtor in Possession)가 영국에 도입됐고, 이후 유럽에도 유사한 절차가 도입됐다"며 "이전에는 구조조정을 법원 주도로 했는데, 이제는 기업 차원에서 더 많은 통제권을 갖고 진행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DIP는 회생절차에서 기업의 기존 경영자가 관리인 역할을 수행하며 신규자금을 조달해 조기 회생을 유도하며 경영 노하우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사모대출 시장의 급성장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트렌드로는 직접 대출(사모신용대출) 시장의 급성장이 꼽힌다. 소규모 캐피탈사나 사모 대출 기관이 상장사나 대기업에 수십억 달러의 대출을 직접 제공하는 방식이다.

골드버그 변호사는 "미국 자본 시장에서 최근 5년간 직접 대출로의 대이동이 일어났으며, 전통적인 신디케이트론이나 공공 시장보다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직접 대출자가 통제권을 가지고 차주와 유연하게 계약을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모신용대출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급등하면서 전통적인 은행들은 약정한 대출을 판매하기 어려워 손실을 보았고, 이에 따라 대규모 대출을 꺼리게 된 반면, 현재 대차대조표 기준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사모신용대출 기관들은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램 변호사는 "아시아에서도 사모신용대출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며 "신규 거래 지원뿐 아니라 재무적 어려움, 인수합병(M&A) 거래 지연으로 인한 자금 필요, 만기 도래 대출 상환, 추가 지분 투자 없이 사업 확장을 원할 때 선순위 대출과 지분 투자 사이에 레이어를 추가하는 경우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0년간 다국적 투자자들이 아시아에 자산을 배분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사모 대출 실행에 큰 기회가 있다"고 전망했다.


유동화채권 판단 기준은 '실질'


최근 홈플러스 회생절차에서는 유통업체가 카드사 매입채권을 유동화한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STB)을 일반 상거래채권과 동일하게 취급해 조기 변제하기로 한 결정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엄밀히 금융채권에 속하는 유동화 채권을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한 사례로, 채권자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중요한 판단이다.

이와 관련 골드버그 변호사는 "유동화 구조에서는 매출채권 등 기업의 특정 자산을 채권자들에게 담보로 제공하는데, 이것이 진정한 매각(true sale)으로 간주되면 채무로 인식되지 않지만, 대출 거래로 인식되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어 그 구분이 중요하다"며 "실질을 중시하는 미국 챕터 11에서는 거래의 법적 형식보다 경제적 실질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유동화 구조에서 매각이 '진정한 매각'으로 간주되려면 자산의 위험과 보상이 실질적으로 이전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제시카 워커 레이텀앤왓킨스 파트너 변호사(영국)가 이달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레이텀앤왓킨스 제공
워커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구조조정은 기업이 수익성을 유지하고 상업적 라이프사이클을 이어가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램 변호사는 "전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된 오늘날, 구조조정은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기업이 국내외 시장에서 환경에 맞게 조정하고, 재편 및 확장해 나가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