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빌라'는 '손흥민 빌라'와 무엇이 다를까요 [최원철의 미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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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손흥민 선수가 영국에서 거주하는 주택도 빌라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 자리하고 있어 시세는 130억원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수영장과 자쿠지, 컨시어지 서비스를 갖춘 고급 빌라이지만, 국내 강남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을 생각하면 단순히 고급 주택이어서 비싸다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런던이나 파리의 빌라는 수백 년 전에 지어져 계속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관은 석조 건물로 고풍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지만, 노후화로 인해 난방과 냉방 시설이 열악합니다. 실내 편의시설이나 엘리베이터, 냉난방 설비도 부족해 국내에서 전세사기가 발생한 일부 빌라보다도 주거 환경이 불편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발과 재건축이 어렵기 때문에 도심 내 낡은 빌라들이 여전히 높은 매매가와 임대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형 건설사들이 하노이와 호찌민에 진출해 고층 아파트를 건설했지만, 분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아파트가 저소득층의 주거 형태로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대우건설은 하노이 스타레이크시티에 3층 규모의 초호화 빌라를 건설하면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빌라들이 여전히 사용됩니다.

최근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와 용산구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되면서 아파트 갭투자가 막혔습니다. 마포구와 동작구, 강동구 등으로 수요가 분산될 가능성이 커지자 국토교통부가 시장 모니터링에 나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라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데도 주목받질 못하고 있습니다. 거래량 증가율도 전년 대비 2% 수준에 머무는 상황입니다.
해외에 비해 건물 상태와 주거 환경이 우수한데도 빌라가 기피 대상이 된 이유는 주변 환경에 있습니다. 빌라가 밀집한 지역은 도로는 좁고 길거리는 어둡습니다. 주차 공간이 미흡해 불법주차도 만연합니다. 도시 계획이 미흡한 탓에 거주 선호도가 낮아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서민들도 빌라 내 집 마련보다는 소형 아파트 전세를 선호합니다. 다만 아파트만 대거 건설되는 도시가 과연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특히나 용적률과 고도 제한을 완화해 급격하게 늘어가는 49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도 서울시는 보다 나은 주거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소규모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해 아파트를 늘리고 있습니다. 아파트만 짓다 보면 결국 일부 도시는 미래 SF 영화에 등장하는 폐허와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아파트만 늘리기보단 수백 년이 지나도 거주하고 싶은 빌라를 지어야 할 때입니다.
빌라도 개별 건물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개발해 내 집 마련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도시계획을 새롭게 정비해야 합니다. 전세사기와 같은 문제도 빌라에 대한 거주 선호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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