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빌라'는 '손흥민 빌라'와 무엇이 다를까요 [최원철의 미래집]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손흥민이 거주하는 영국 런던 햄프스티드 일대 모습. 사진=손흥민 인스타그램
손흥민이 거주하는 영국 런던 햄프스티드 일대 모습. 사진=손흥민 인스타그램
전세 사기 이후 빌라 전세 기피가 심해지며 전세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어려워졌습니다. 갭투자가 어렵고, 팔리질 않으니 결국 짓지도 않게 되고 있어 서민 주거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세 사기로 외면받는 빌라는 사라져야 할까요? 서민들의 주거 공간으로 남아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손흥민 선수가 영국에서 거주하는 주택도 빌라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 자리하고 있어 시세는 130억원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수영장과 자쿠지, 컨시어지 서비스를 갖춘 고급 빌라이지만, 국내 강남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을 생각하면 단순히 고급 주택이어서 비싸다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런던이나 파리의 빌라는 수백 년 전에 지어져 계속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관은 석조 건물로 고풍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지만, 노후화로 인해 난방과 냉방 시설이 열악합니다. 실내 편의시설이나 엘리베이터, 냉난방 설비도 부족해 국내에서 전세사기가 발생한 일부 빌라보다도 주거 환경이 불편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발과 재건축이 어렵기 때문에 도심 내 낡은 빌라들이 여전히 높은 매매가와 임대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형 건설사들이 하노이와 호찌민에 진출해 고층 아파트를 건설했지만, 분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아파트가 저소득층의 주거 형태로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대우건설은 하노이 스타레이크시티에 3층 규모의 초호화 빌라를 건설하면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빌라들이 여전히 사용됩니다.
서울의 빌라 밀집 지역 모습. 사진=한경DB
서울의 빌라 밀집 지역 모습. 사진=한경DB
건물만 본다면 한국의 빌라는 유럽 초고가 빌라 못지않습니다. 오히려 냉난방 시설에 우수해 주거 환경은 더 좋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빌라는 아파트 입주 전 전·월세를 통해 임시로 거주하는 공간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내 집 마련의 대상으로 올라서질 못하는 것입니다.

최근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와 용산구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되면서 아파트 갭투자가 막혔습니다. 마포구와 동작구, 강동구 등으로 수요가 분산될 가능성이 커지자 국토교통부가 시장 모니터링에 나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라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데도 주목받질 못하고 있습니다. 거래량 증가율도 전년 대비 2% 수준에 머무는 상황입니다.

해외에 비해 건물 상태와 주거 환경이 우수한데도 빌라가 기피 대상이 된 이유는 주변 환경에 있습니다. 빌라가 밀집한 지역은 도로는 좁고 길거리는 어둡습니다. 주차 공간이 미흡해 불법주차도 만연합니다. 도시 계획이 미흡한 탓에 거주 선호도가 낮아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서민들도 빌라 내 집 마련보다는 소형 아파트 전세를 선호합니다. 다만 아파트만 대거 건설되는 도시가 과연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특히나 용적률과 고도 제한을 완화해 급격하게 늘어가는 49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초고층 아파트. 사진=게티이미지
일산신도시 킨텍스 주변에는 49층 규모 아파트 단지가 대거 조성됐습니다. 초기에는 가격이 급등했지만,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개통 이후에도 기대만큼의 가치 상승을 이루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초고층 아파트는 시세가 크게 오르지 않으면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토지 지분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노후화하며 주거 환경은 점차 악화될 것이고, 나중에는 철거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서울시는 보다 나은 주거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소규모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해 아파트를 늘리고 있습니다. 아파트만 짓다 보면 결국 일부 도시는 미래 SF 영화에 등장하는 폐허와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아파트만 늘리기보단 수백 년이 지나도 거주하고 싶은 빌라를 지어야 할 때입니다.

빌라도 개별 건물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개발해 내 집 마련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도시계획을 새롭게 정비해야 합니다. 전세사기와 같은 문제도 빌라에 대한 거주 선호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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