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진 칼럼] '판도라의 상자' 강남 부동산

시장 흐름 놓친 섣부른 규제 완화
전체 시장 통규제 부작용 불러

서욱진 논설위원
지난 1월 14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규제 개혁 토론회. 도곡동의 한 공인중개사가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철폐해달라고 요청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해제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그는 “잘못하면 (집값에) 기름 붓는 역기능이 있을 수 있어 과감하게 풀지 못했다”며 “다행히도 부동산 가격이 지난 2~3개월 하향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해제 한 달여 만에 뒤집힌 토지거래허가제 사태의 시발점이었다. 서울시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달 13일 잠실·삼성·대치·청담동을 허가구역에서 전격 해제했다. 무려 4년8개월 만이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해제 발표 직후 강남권 집값이 들썩였고,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지난달 셋째 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전주 대비 세 배 높은 0.06%를 기록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해제 지역의 평균 매매가격은 오히려 약 5% 하락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일부 고가 거래가 부각됐을 뿐 전체적인 가격 급등 현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오 시장은 지난 10일 “허가구역을 풀면 약간 가격이 상승할 것은 예상했던 바”라며 “다만 가격 상승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과도하면 다시 규제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거래허가제를 다시 도입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이달 둘째 주 강남 3구의 상승률이 7년 만에 최대를 기록하면서 강북, 도봉 등 7개 구까지 상승 전환하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정부와 서울시는 19일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를 다시 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원칙적으로 서울시의 거래허가제 해제는 반시장적 조치를 되돌린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지 않고, 해제 시기를 잘못 잡은 것은 뼈아픈 실책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8월 1.27%로 정점을 찍고 이후 줄곧 하락해 올해 1월(0.01%)에는 보합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1월에도 강남(0.05%), 서초(0.15%), 송파(0.22%) 등 강남 3구만은 예외였다.

주간 단위로 보면 거래허가제 해제 직전 강남 3구의 오름세는 더 뚜렷이 확인된다. 지난달 10일 기준 시세를 보면 강남(0.03%→0.08%), 서초(0.06%→0.11%), 송파(0.13%→0.14%) 모두 전주 대비 상승률이 확대됐다. 3주 연속 상승폭을 키운 것이어서 상향 추세를 타고 있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했다. 규제 완화 기대가 커지면서 매수세 유입이 빨라지고 있었다. 이런 시장 흐름을 간과하고 강남 핵심 지역의 규제를 섣불리 해제하니 상승세에 불이 붙은 셈이다.

오판을 인정하고 발 빠른 대처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지만,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를 허가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집값을 잡는 게 급하다고 해도 서울 전체 면적의 3분의 1, 40만 가구를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 특히 재건축이나 개발 호재가 없는 아파트까지 포함한 것은 해제 강행과 맞먹는 무리수다.

효과도 의문이다. 거래허가제 같은 인위적 규제는 처음에는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장은 점차 내성을 갖는다. 규제가 끝나는 순간, 눌렸던 가격은 다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입증됐다.

더 큰 문제는 강남 3구와 용산구가 과연 예정대로 6개월 후 허가구역에서 해제될 수 있을지다. 이번에 쏟아진 비판과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해프닝으로 토지거래허가제는 더 풀기 힘든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언제 해제될지 기약 없이 주거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각종 부작용을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