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IT인사이드] 다음의 다음 30년을 기대하며

이승우 테크&사이언스부 기자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5년 2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설립됐다. 프랑스에서 인지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청년 이재웅’과 그의 대학 후배인 이택경(현 매쉬업엔젤스 대표), 그리고 이재웅의 고교 동기이자 사진작가인 고(故) 박건희 씨가 공동 창업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처음 만든 서비스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버추얼 갤러리’였다. 박씨는 한 인터뷰에서 “인터넷은 시공을 초월한 작품 교류는 물론이고 문화예술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최상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당시 광주비엔날레 전시회 소식을 실시간으로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후 패션 전문 서비스 ‘패션넷’, 영화 정보 서비스 ‘싸이네마’, 청소년 웹진 ‘채널텐(Ch.10)’ 등 다양한 콘텐츠로 범위를 확대했다.

다음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계기는 1997년 5월 문을 연 ‘한메일넷’이다. 이전에도 이메일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주로 PC통신의 부가 서비스 형태로 제공됐다. 한메일넷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웹 기반 무료 이메일 서비스다. 인터넷 가입 후 처음 하는 일이 한메일 주소 만들기였을 정도다. 당시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맞물려 서비스 시작 1년 반 만에 회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잘못된 선택으로 1위 빼앗겨

다음커뮤니케이션이 1999년 선보인 신문 광고. 토종 서비스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1999년 선보인 신문 광고. 토종 서비스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1998년 12월에는 검색과 쇼핑 기능을 도입하며 본격적인 포털 서비스 형태를 갖췄고 이듬해인 1999년 7월 브랜드를 한메일넷에서 다음으로 변경했다. 커뮤니티 서비스인 다음 카페와 여성 전용 서비스 미즈넷 등도 이즈음 도입됐다. ‘국가대표’ 포털 서비스로 부각되면서 주식 시장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국내 포털 기업 최초로 1999년 11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해 26일 연속 상한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2000년대 초반 글로벌 포털 서비스 야후를 제치고 국내 1위를 차지한 다음은 치명적인 한 번의 실수로 선두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바로 2002년 도입한 ‘온라인 우표제’다. 당시 스팸 메일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다음은 메일을 대량으로 보내는 사업자에게 비용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 대신 수신자가 ‘정보성 이메일’이라고 피드백을 주면 비용을 면제해줬다. 스팸으로 인한 시스템 부하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도 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로 여겨졌다.

11년 만에 독립…반전 가능할까

일반 이용자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이메일 마케팅을 하려는 기업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대다수 웹사이트에서 회원 가입할 때 한메일 주소는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 과정에서 네이버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다음은 3년 만인 2005년 6월 온라인 우표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이미 네이버로 기울어진 흐름을 뒤집을 수 없었다.

다음은 이후 UCC(사용자 창작 콘텐츠)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차별화에 나섰지만 네이버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2014년 카카오와 다음이 합병하면서 ‘다음카카오’가 탄생했다. 곧바로 1년 뒤 다시 사명을 카카오로 바꾸면서 다음이란 회사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후에도 다음 서비스는 꾸준히 내리막을 걸었다. 한때 40%에 육박했던 다음의 포털 시장 점유율은 지난달 2.7%를 기록했다. 네이버, 구글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빙에도 추월당했다.

카카오는 2023년 5월 다음 사업 부문을 사내독립기업(CIC)으로 전환한 데 이어 지난 13일 사내 간담회를 통해 다음 분사 계획을 밝혔다. 분사를 통해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찾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업계에선 카카오가 분사에 이어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직원들이 스스로 카카오 잔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전 세계를 찾아봐도 다음보다 오래된 포털 서비스는 야후(1994년) 정도밖에 없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명맥을 이어온 다음이 또 한 번 저력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