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에 주식 더'…채권혼합형 ETF 인기

순자산 3.4조…2년여만에 6배

'위험자산 한도 70%' 규제 우회
주식 비중 90%대까지 확대 효과

TDF 등 신상품 출시 경쟁 치열
'TIGER 2045' 등 상장 봇물
퇴직연금 계좌에서 100% 한도로 담을 수 있는 채권혼합형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연금계좌 내 위험자산 70% 한도를 넘어 주식 비중을 극대화하려는 투자자가 몰리면서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ETF 출시 경쟁이 이어지자 관련 상품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채권혼합형 ETF의 순자산 총액은 전날 기준 3조4005억원에 달했다. 2022년 말(5534억원)과 비교해 2년3개월여 만에 순자산이 약 6배 늘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올 들어서만 6595억원 증가했다. 상장된 채권혼합형 ETF는 2022년 말 35개에서 25일 기준 48개로 늘어났다.

채권혼합형 ETF에 뭉칫돈이 몰리는 건 퇴직연금 계좌에서 주식 비중을 높이려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국은 주식형 펀드 등 위험자산 비중을 적립금의 70%로 규제하고 있다. 나머지 30%는 예·적금과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한다.

이 안전자산 30% 몫에 채권혼합형 ETF를 담으면 ‘위험자산 70% 벽’을 넘을 수 있다. 주식과 채권을 일정 비율로 담은 채권혼합형 ETF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채권혼합형 ETF로 주식 투자 비중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단일종목 채권혼합형 ETF는 주식 비중이 최고 30%다. 테슬라 30%, 국고채 70% 비율로 투자하는 ‘TIGER 테슬라채권혼합Fn’ ETF가 대표적이다. 순자산이 총 4102억원으로 채권혼합형 상품 중 가장 많다.

지수형 채권혼합 ETF엔 주식을 50%까지 담을 수 있다. 2023년 말 규제 완화로 종전 40%에서 10%포인트 높아졌다. ‘SOL 미국배당미국채혼합50’과 이날 출시된 ‘TIMEFOLIO 미국나스닥100채권혼합50액티브’는 주식을 절반가량 담은 상품이다. 위험자산 70% 한도만큼 주식형을 넣고, 남은 안전자산 30% 한도로 이 ETF를 담으면 연금계좌 내 주식 비중을 85%로 높일 수 있다.

◇ ‘1000조원 시장’ 노리는 운용사들

최근 들어 채권혼합형 ETF 신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이 자산운용사의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면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퇴직연금 시장은 현재 432조원에서 연평균 약 9.2% 성장해 2034년 1042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은퇴 시기에 맞춰 자산을 배분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 ETF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날 미국 S&P500지수에 집중 투자하는 ‘TIGER TDF2045’를 상장했다. S&P500과 국내 단기채 비중은 각각 79%, 21%(상장일 기준)다. 앞서 한국투자신탁운용도 ‘ACE TDF2030액티브’ ‘ACE TDF2050액티브’ 등을 출시했다.

주식 비중을 80%까지 높일 수 있는 ‘적격 TDF’는 퇴직연금 내 투자 제한이 없다. 따라서 연금계좌 내 주식형 펀드로 70%만큼 넣고, 나머지를 적격 TDF로 채우면 주식 비중을 이론적으로 94%까지 높일 수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퇴직연금 내 주식 비중을 높이면서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게 미국 등 선진국의 공통적인 정책 흐름”이라며 “통계적으로 봤을 때 주식 비중이 높을수록 장기 성과가 우월했다”고 설명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