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상법개정안 지금 타이밍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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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회장 4주년 간담회악재 겹친 '초불확실성 시대'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상법 개정안과 주 52시간 근로제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국내 최대 경제 단체를 이끄는 수장이 공식 석상에서 해당 사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예외 없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은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근거를 들었다.
상법 개정 땐 새로운 국면 돌입
"주 52시간, 기업 자율성 침해"
상의 회장으로 첫 공개 반대
"美 LNG·농산물 수입 확대"
러트닉 상무장관 만나 제안
최 회장은 지난 25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열린 취임 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통상 문제와 인플레이션 등 금융 불안, 인공지능(AI)발(發) 기술 충격, 국내 정치 문제까지 겹치면서 ‘초불확실성의 시대(super unknown)’에 놓여 있다”며 “기업의 의사 결정이 미뤄질 수밖에 없는 초유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 상법을 바꿀 타이밍(시점)인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최 회장은 “상법은 경제인에겐 일종의 헌법”이라며 “상법 개정은 아예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주 52시간 근무 예외 규정을 두고 공전하는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최 회장은 “제도의 도입 취지는 이해하지만 법으로 규제하는 건 다른 문제”라며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근길 교통수단을 예로 들며 “버스만 타라고 하면 시간 단축을 위해 택시를 타야 할 상황에도 어떤 선택권이 없다”며 “규제는 자율을 억압하고 창의성을 추락시켜 성장에도, 사회 문제를 푸는 데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민간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만난 일화도 간담회에서 공개했다. 그는 “(러트닉 장관이) 시간을 쪼개서 한국 사절단을 만나줬다”며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최 회장은 회동에서 미국의 무역적자 증가는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많기 때문이라고 러트닉 장관에게 설명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와 조 바이든 대통령 시기를 합해 8년 동안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 적자의 80%가 FDI 형태로 미국에 재투자됐다”며 “투자한 공장에 중간재를 한국에서 납품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역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2105억달러의 대미 무역 흑자 중에서 1651억달러(78.4%)를 미국에 재투자했다. 최 회장은 미국 정부 측에 “액화천연가스(LNG)와 농산물 등의 수입을 늘릴 수 있다는 의사도 전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1970년대부터 한국 경제를 발전시켜 온 ‘제조-수출’ 모델을 바꿀 때가 됐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제조업 경쟁력은 중국 등에 밀려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며 “제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AI를 도입해 생산 비용을 낮추는 등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내 AI 경쟁력은 세계 10위권 밖으로 우리만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하지 않으면 AI 선진국에 종속될 것”이라며 “일단 AI 기반을 제대로 갖추고 독자적인 AI LLM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