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된 고운사, 범종만 덩그러니…보물·천연기념물 15건 소실

화마로 전소된 국가유산

영조시대 지은 고운사 연수전
화마 휩쓸려 단청·벽화 모두 타
부석사 등 보물 15점 긴급 피난

불길 하회마을·병산서원 근접
인근 주민에 대피 재난문자 발송
< 참혹함만 남은 천년고찰 > 2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 경내에 있던 목조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재가 됐다. 이번 화재로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가운루(오른쪽 작은 사진)와 연수전 등이 소실됐다. /연합뉴스
화마로 전소된 경북 의성의 천년고찰 고운사가 26일 참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잿더미가 된 사찰에서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깨진 범종 정도였다. 경북 북부를 휩쓸고 있는 ‘괴물 산불’로 영남 지역 국가유산 피해가 잇달았다. 국가지정 문화유산 보물인 고운사 연수전, 가운루 등을 비롯해 15건의 문화유산이 불에 탔다.

◇‘괴물 산불’에 영남 문화유산 소실

이날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국가지정 보물 2건, 천연기념물 3건, 명승 3건, 민속문화유산 3건, 시·도지정 4건 등 총 15건의 문화유산이 피해를 입었다.

고운사 연수전은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타버렸다. 연수전 화재 현장엔 무너져 내린 기와와 건물 주변을 에워싼 흙담만 남았다. 고운사 연수전은 조선시대 영조와 고종이 기로소(耆老所)의 일원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기로소는 70세가 넘은 정이품 이상 문관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다. 단청과 벽화 수준이 뛰어난 데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도상이 남아 있어 2020년 보물로 지정됐으나 화재로 소실됐다.

연수전과 5분 거리로 붙어 있는 가운루도 마찬가지다. 1668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루는 조선 중기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사찰 누각이다. 팔작지붕을 갖춘 누각으로 계곡을 가로질러 지은 사찰 누각 중 규모가 가장 컸다. 지난해 7월 보물 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 불과 8개월 만에 화마에 휩쓸리고 말았다.

사찰뿐만이 아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울산 울주 목도 상록수림은 초본류, 관목류 등 1000㎡ 규모가 잿더미로 변했다. 목도 상록수림은 동해안에 있는 유일한 상록수림이다. 이외에 천연기념물인 안동 구리 측백나무숲과 영양 답곡리 만지송, 민속문화유산인 송소·서벽·사남고택, 안동 만휴정 원림 등도 일부 소실됐다.

◇하회마을·병산서원도 안심 못해

대형 산불이 좀처럼 잡히지 않아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산불이 뻗어나가는 길인 화선이 의성과 안동 일대 산림을 태우며 병산서원까지 직선거리 3㎞ 안팎으로 근접했다. 안동시는 이날 오후 8시20분께 인금리 등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주변 주민들에게 광덕리 저우리마을로 대피하라고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하회마을은 특성상 목조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병산서원 등 주요 시설물 주변에는 산불 확산 지연제(리타던트)를 살포했다.

옮길 수 있는 국가유산은 빠르게 소산(유물 훼손이 우려될 때 안전한 곳으로 이동) 작업이 이뤄졌다. 국가유산청은 부석사, 고운사, 봉정사 등이 소장한 보물 10건, 시·도유산 5건 등 유물 15건을 이송했다. 오후 6시30분께 지리산국립공원 내 덕산사에 있던 국보 제233-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도 동의보감촌 한의학박물관으로 옮겼다.

류병화/오유림/임호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