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부활 '분양형 노인주택'…"인프라 없는 시골에 누가 사나" [집코노미-집 100세 시대]

재도입 준비 중인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아파트와 비슷…만 60세 이상 분양 가능
식사·청소 등 돌봄 서비스는 돈내고 신청

2015년 폐지된 후 현재는 임대형만 있어
분양 후 시설을 잘 운영할수 있을지 관건
“인구감소지역만 허용 실효성 낮아” 지적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조성되는 하아엔드 시니어 레지던스 VL르웨스트 /VL르웨스트 홈페이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조성되는 하아엔드 시니어 레지던스 VL르웨스트 /VL르웨스트 홈페이지
지난해 정부는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도입을 예고했다. ‘시니어 레지던스’로 통칭하는 노인 주거시설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다. 여러 정치적 혼란 속에 노인복지법 개정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도입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2015년 폐지한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제도를 정부가 왜 다시 꺼내 들었는지,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고령자 친화적인 주거 공간을 통칭하는 말로 '시니어 레지던스'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소득 수준에 따라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 실버스테이(장기 민간임대 주택), 고령자 복지주택(공공임대 주택) 등으로 나뉜다.
자료: 기획재정부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 (2024년 7월 23일)
자료: 기획재정부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 (2024년 7월 23일)
지금까지 가장 많이 공급된 것은 노인복지주택이다. 비싼 게 단점이다. 보증금이 2억~10억원, 월 임대료는 230만~460만원에 이른다. 비싼 만큼 시설과 서비스는 좋다. 안부 확인, 청소와 식사 등 가사 서비스, 건강·여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령자 복지주택은 보증금이 200만~350만원, 월 임대료는 4만~7만원 정도다. 지자체가 운동·여가, 식사, 복지·보건 서비스 등을 지원한다. 대신 기초생활수급자나 저소득층 등 특정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입소할 수 있다.

실버스테이는 중산층 고령 가구를 대상의 공공지원 민간 임대주택이다. 2024년 도입됐다. 기금 출자, 저금리 융자 등 공공지원을 받는 대신 임대료를 시세의 95% 이하로 하는 규제가 적용된다. 건강 관리, 안부 확인, 식사는 기본으로 제공하되, 기타 서비스는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실버스테이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에 국내 노인 주거 시설은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쪽에선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고급 주거 시설이, 다른 쪽에선 저소득층 노인을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 주택이 공급되고 있다. 중간 소득 계층은 적절한 노인 주거 시설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지난해 7월 ‘시니어 레지던스 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기존의 토지 및 건물 소유권 확보 요건을 완화해 사용권 확보만으로도 시니어 주택 건설과 운영을 가능하게 하겠다고 했다. 고령자 복지주택을 매년 3000가구 공급하겠다고 했다.

그중에서 가장 관심을 끈 건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도입이었다. ‘신(新)분양형 실버타운’을 인구감소지역 89곳에 도입하기로 한 내용이다. 강원 고성, 충남 예산, 전남 곡성, 경남 산청 같은 곳도 있지만 부산(동구·서구·영도구), 대구(남구·서구·군위군) 등 광역시 자치구도 일부 포함됐다.

현재는 임대형으로만 노인복지주택이 운영되고 있지만 2015년 이전엔 분양형과 임대형이 있었다. 분양형은 아파트처럼 주거 공간을 분양받아 노인이 소유권을 획득해 거주하는 방식이다.
자료: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분양형은 노인복지법에 따른 입소 자격, 매매·임대는 만 60세 이상만 가능하다. 소유권이 입소자에게 있기 때문에 재산세를 내야 한다. 대신 주택연금을 이용할 수 있다. 또 여러 보살핌 서비스 이용 요금이 임대료에 포함된 임대형과 달리 분양형은 기본으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추가 비용을 내고 서비스를 신청해야 한다.

민간 공급자 입장에서도 장점이 있었다. 건축용지를 취득할 때 취득세를 일부 감면받을 수 있었다. 일반 공동주택보다 완화된 시설 설치 기준을 적용받았다. 용적률 혜택도 있었다.

다만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을 공급한 측이 개발 이익만 취하고, 운영에 손을 떼면서 입주 노인들이 피해는 보는 일이 생겼다. 2008년 보건복지부는 법 개정을 통해 노인복지주택의 분양·양도·임대 대상을 60세 이상인 자로 한정했다. 이를 위반하는 처벌 규정도 마련했지만 이미 상당한 문제가 발생한 뒤였다.

경기 파주 한 아파트 단지는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으로 개발됐지만 70% 넘는 입주민이 이와 관련 없는 일반 가구다. 주민들은 분양 당시 분양업체로부터 노인복지주택이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입주 과정에서도 파주시로부터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결국 2015년 7월 개정된 노인복지법에 의해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폐지됐다. 이후 인허가를 받은 노인 주거 시설은 임대형으로만 운영할 수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논문 ‘신분양형 노인복지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조세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기존에 분양된 노인복지주택은 전국에 19곳이 있다. 이 중 11곳은 노인복지법에 명시된 입소 자격과 무관하게 조건 없이 입소 및 임대할 수 있다. 9곳은 노인복지시설이 아닌 일반 아파트와 같아서 식사, 청소, 세탁 등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분양형을 다시 꺼내 든 것은 새로운 유형의 노인 주거 시설을 통해 공급을 늘리고, 입소자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서다. 분양형은 계약 기간 종료 후 퇴거해야 할 필요가 없다. 분양받기 위해 초기에 많은 돈을 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임대료보다 총비용이 낮을 수 있다. 다만 노인복지주택의 핵심은 ‘운영’인데, 운영업체가 노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얼마나 잘 제공할 수 있는지 그 신뢰성이 불투명하다.

지난 2월 고려대 정책대학원 논문 ‘초고령 사회, 주거 안정을 위한 시니어 주택 공급 활성화 및 주거 편익 향상 방안 연구’는 “정부의 신분양형 제도 도입 방침에는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며 “2015년 분양형 노인복주택 제도가 폐지된 배경에는 민간 시행사의 수익 중심 운영과 부실한 서비스 관리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료: 행정안전부 고시, 이장원 ‘신분양형 노인주택 공급활성화를 위한 조세 지원방안’(2025)
정부가 인구감소지역 89곳에만 허용하겠다는 점도 실효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노인 거주 시설은 의료시설, 교통 접근성 등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 들어서야 하는데, 인구감소지역은 이와 거리가 멀다. 또 자산 가치 하락으로 고액의 분양 대금을 투자한 노년층 입주자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사망 후 노인복지주택을 상속할 될 때도 지역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만 60세 미만 자녀는 입주할 수 없어 매각이나 시설에 따라 계약 해지 및 환급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인구감소지역의 경우 집을 처분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지방 미분양이 많은 상황에서 건설사도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을 지을 유인이 크지 않다.

따라서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이 정말 도입되더라도 정부가 제안한 인구감소지역에만 허용하는 방식으론 활성화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안으로 수요 기반이 확보된 지역을 중심으로 임대와 분양을 혼합한 형태로 시범 사업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해 임대 비율과 임대 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시범 사업을 통해 도출한 문제점과 개선 사항을 반영해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세대 간 분리’가 아니라 ‘세대 공존형’이 돼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기존 아파트 단지의 커뮤니티 시설을 통한 방식이다. 안부 확인·식사·청소·세탁 등 서비스만 더해도 기존 단지가 노년층 거주자를 위한 훌륭한 주거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65세 인구가 전 국민의 20%를 웃도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은퇴한 시니어 세대에게 건강과 주거가 핵심 이슈입니다. ‘집 100세 시대’는 노후를 안락하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주택 솔루션을 탐구합니다. 매주 목요일 집코노미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