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국민연금, 최윤범 손 들어줬다…고려아연 경영권 지켜낼까

28일 오전 고려아연 정기 주총 개최
법원 "영풍, 이번 정기 주총 의결권 행사 못 해"
국민연금도 영풍·MBK 측 이사 후보 대거 반대

영풍·MBK "주식 배당으로 SMH 지분율 낮춰…의결권 행사 가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사진=연합뉴스
28일 고려아연 경영권이 걸린 정기 주주총회 운명의 날이 밝았다. 앞서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영풍의 주총 의결권 행사를 허용해 달라'며 제기한 가처분을 법원이 기각하며 이들의 의결권이 제한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승기를 잡은 모습이다. 캐스팅보터 역할인 국민연금도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다만 MBK·영풍 연합은 영풍 정기 주총에서 배당을 통해 상호주 관계를 해제하며 의결권을 부활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날 주총이 파행할 가능성이 점쳐지며 양측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원, 영풍이 제기한 가처분 기각…최 회장 승기 점쳐

28일 오전 9시 고려아연은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호텔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연다. 주요 안건은 △이사회 비대화를 통한 경영활동의 비효율성을 막기 위한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의 건 등 △이사 수 상한이 19인임을 전제로 한 집중투표에 의한 이사 8인 선임의 건 △이사 수 상한이 없음을 전제로 한 집중투표에 의한 이사 선임의 건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서대원) 등이다.

쟁점은 영풍의 의결권이다. MBK·영풍 연합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41.25% 중 영풍 보유 지분이 25.42%에 달한다. 최윤범 회장 측(18.04%)은 우호 지분을 더해 30% 안팎이다. 주총에서 영풍 의결권 행사 여부에 승패가 달린 이유다.

그러나 전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MBK·영풍 연합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주총 의결권 행사를 허용해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고려아연은 해외 자회사 선메탈홀딩스(SMH)를 통해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되면서 영풍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영풍은 법원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 상법상 상호주 제한 효력에 관련된 회사는 '주식회사'여야 하고, 또 SMH가 주식회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SMH가 '외국법인'인 점도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외국회사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상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외국법을 함께 고려하면 대한민국 상법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해 해석하게 된다는 취지다 .

게다가 법원은 영풍이 갖고 있던 고려아연 지분을 현물 출자한 신생 '유한회사' 와이피씨(YPC)의 의결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상호주 구조를 만들어도 지분이 상호주 효력이 발생할 수 없는 YPC로 넘어갔기 때문에 YPC의 의결권을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번 정기 주총의 주주는 주주명부 폐쇄일인 '2024년 12월 31일' 고려아연 지분을 갖고 있던 영풍이기 때문에 고려아연이 만든 상호주 구조에 따라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된다고 판단했다. 영풍은 지난 7일 이사회를 열고 고려아연 주식 25.42%를 YPC에 현물출자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고려아연 경영진에 힘 실어줘

사진=임형택기자
사진=임형택기자
이번 주총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도 고려아연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4.51%다.

전날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는 고려아연 정기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했다. 수책위는 이사회 측이 제안한 '이사 수를 19인 이하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의 건'(제2-1호)에 대해 '찬성'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사 수 상한 안건'의 주총 결과에 따라 '이사 선임에 관한 안건' 제3호 및 제4호의 행사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사 수 상한 안건'이 가결되면 이사회에서 추천하는 제임스 앤드루 머피·정다미 후보와 MBK·영풍 연합 측의 권광석·김용진 후보에 집중투표제로 부여된 의결권을 나눠서 행사하기로 했다. 이사회 측이 제안한 후보는 5명이고, MBK·영풍 연합 측 후보는 17명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고려아연 측에 힘을 실어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수에 선출하려는 이사 수를 곱한 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1주를 가진 주주는 5명의 이사를 선출할 때 총 5표(1주×5명)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반대로 '이사 수 상한 안건'이 부결될 경우 이번 주총에서 선임할 이사의 수에 대해 12인 안에 '찬성' 및 17인 안에 '반대'하기로 했다. 이때, 집중투표제로 선임할 이사 후보에 대해서는 제임스 앤드루 머피, 정다미, 최재식, 권광석, 김명준, 김용진 총 6인 후보에게 의결권을 나눠 행사하기로 했다.

수책위는 '감사위원회 위원 권순범 선임의 건'(제5-1호), '감사위원회 위원 이민호 선임의 건'(제5-2호),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서대원 선임의 건'(제6호)에 대해서는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 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에서다.

MBK·영풍 연합의 의결권이 제한되고, 국민연금이 손을 들어준 덕에 최윤범 회장 측이 의도한 안건은 대부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선 정기주총 이후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윤범 회장 측이 여전히 주도권을 쥐겠지만 MBK·영풍 연합 측도 최소 3~4명(기존 장형진 고문 포함) 이상 이사회에 진입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MBK·영풍 "영풍 정기주총서 상호주 관계 해제…이번 주총서 의결권 행사 가능"

지난 1워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사진=연합뉴스
변수는 MBK·영풍 연합의 반발이다. MBK·영풍은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결정에 대해 즉시 항고를 제기했다. 또 영풍은 전날 정기주총을 통해 1주당 0.04주를 배당함으로써 상호주 관계가 해제됐다고 주장했다. MBK·영풍 연합 측은 "(주식배당에 따라) 고려아연 해외 계열사인 SMH의 영풍에 대한 지분율이 10% 미만으로 하락했고 상호주 관계가 성립되지 않게 돼, 고려아연 정기주총에서 최 회장 측이 주장하는 영풍의 의결권 제한은 적용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상법 제369조 제3항에 따르면 회사(SMH),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영풍)의 발행주식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영풍)가 가진 회사 또는 모회사(고려아연) 주식의 의결권이 제한된다. 하지만 영풍은 주식배당으로 SMH의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낮췄다는 게 MBK·영풍 측 주장이다.

MBK·영풍 측은 "SMH는 영풍의 정기주주총회 기준일(2024년 12월 31일) 당시, 주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식배당을 받을 수가 없다"며 "이번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영풍은 물론, 고려아연 모든 주주의 정당한 주주권이 올바르게 행사되고, 고려아연의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했다.

의결권 관련 대립이 이어지며 이번 정기 주총도 지난 임시 주총과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23일 임시 주총은 당초 오전 9시 열릴 예정이었으나 중복 위임장 집계 문제로 5시간 후인 오후 2시께 개회했다. 이후에도 중복 위임장 문제로 주총은 오후 10시가 넘어서 마무리됐다. 일각에선 주총이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