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비관세장벽으로 꼽은 '인증제'…중복·유사제도 통폐합 추진

2027년까지 246개 인증제 손질
美가 상호관세 부과 근거 삼아
관세전쟁 대비 차원서도 필수적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A사는 환경부가 관리하는 인증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에코라벨(환경성적표지 인증)과 친환경 마크(환경표지 인증) 중 어떤 것을 받아야 하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환경성적표지 인증은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표시하는 정보제공용 인증이다. 소비자에게 친환경 제품이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환경표지 인증이 필요하다.

A사 관계자는 “두 가지 중 어떤 게 더 높은 단계의 인증으로 제품 마케팅 등에 유리한 건지 모르겠다”며 “우리나라는 인증제도가 너무 복잡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9년부터 인증제도의 실효성을 따져 통폐합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증제 총수가 늘어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정 편의주의 등으로 인증제 수요가 계속 나오는 가운데 부처 간 소통 미흡으로 중복되거나 비슷한 제도가 생기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정부도 이런 비판 의견을 받아들여 부처별 인증제도의 실효성을 검토한 후 통폐합을 추진키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28일 “2027년까지 현재 28개 부처에서 운영 중인 246개 인증제도가 계속 필요한지를 검토해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80개 인증제의 실효성을 검토하고, 2026년과 2027년에는 각각 83개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과 농산물우수관리시설 인증,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 HACCP 인증과 축산물 HACCP 인증 등이 대표적이다. 검토 결과에 따라 폐지, 통합, 개선, 존속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부처별 인증제도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019년부터 3년 단위로 인증제의 실효성을 검토해왔다. 지난해까지 총 28개 인증제도를 통폐합했다. 하지만 인증제 총수는 186개에서 246개로 계속 늘고 있다. 국표원 관계자는 “부처별로 각자의 정책적 목적을 이행하는 데만 집중하느라 비슷하거나 중첩되는 인증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증제 통폐합 관리는 최근 미국발(發) 관세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교역 상대국의 각종 인증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고, 상호관세 부과의 근거로 삼으려 하고 있어서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발간하는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의 자동차 배기가스 부품 인증 등에 대해 “규제 장벽”이라며 꾸준히 문제 삼고 있다.

불필요한 인증제를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변호사는 “각종 인증제가 과도하거나 중첩되는 것은 국가 주도로 운영되는 경직성 때문”이라며 “각종 산업진흥법을 만들어놓고 인증 조항을 규정해두면 당연히 규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시한 표준을 바탕으로 민간 인증기관이 각 기업이나 제품을 대상으로 인증 서비스를 수행한다”고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