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재난 잦아지는데…정쟁에 300억 헬기예산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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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응능력 부실 '도마 위'
노후화된 장비·인력 확충 시급
기후변화 대비 체계도 급선무

28일 산림당국과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올해 산불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300억원가량의 헬기 도입과 교체 예산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감액예산 심사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국내 대비 물탱크 용량이 두세 배 커 초동 산불 진화에 필수적인 국외 임차헬기 도입(106억원), 노후 카모프 헬기 교체(38억원), 지자체 임차헬기 운영(90억원) 등 300억원가량의 헬기 예산 지원만 제대로 됐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자책이 나오는 배경이다.
산림청은 2027년까지 진화 헬기를 58대까지 늘리는 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오도창 경북 영양군수는 이날 “사흘 동안 기상 악화로 헬기가 전혀 지원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지자체에선 “현재 50대 수준인 산림청 헬기를 최소 70~80대로 늘려 장비 걱정 없이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한국산불학회장인 문현철 호남대 교수는 “수송기나 화물기에 산불 진화 전용 물탱크와 진화 장비를 탑재한 ‘고정익 항공기’를 확보해 헬리콥터의 한계인 야간·강풍 운항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조종사 노령화, 산불진화대와 공무원의 사명감에 의존하는 천수답식 재난 대응 시스템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22일 오전 11시께 시작된 경북 의성 산불은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도 진화율이 5%대에도 못 미쳤다. 한 산불 전문가는 “전날 경남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과 겹치면서 진화 헬기, 특히 대형 헬기가 분산돼 초동 진화에 실패했다”고 했다.기후변화로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초속 27m 이상의 태풍급 강풍이 부는 악조건 속에서 부실한 장비로 일해야 하는 고령 조종사 사고도 매년 반복되는 실정이다. 2022년 양양, 2023년 예천, 이번 의성 사고의 조종사는 모두 70대였다.
기후변화로 가뭄, 산불, 홍수가 번갈아 발생하는 ‘기후 채찍질 현상’(climate whiplash)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재난에 대비하는 체계가 급선무라는 얘기도 나온다. 문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임도를 늘리는 등 국내 숲의 과밀도를 낮춰야 불이 급속히 확산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산불 대응 체계 혁신을 강조해 온 이철우 경북지사는 이날 “미국처럼 함수 능력 2만L급 수송기 등 대형 헬기 도입과 야간에도 조종사가 계기판만 보고 조종할 수 있는 야간 진화 시스템 등 산불 대응 능력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안동=오경묵/오유림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