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임윤찬, 40분간 라흐마니노프의 인생을 쏟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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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
'상주 연주자' 임윤찬, TFO 협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악단 아우르는 거장 면모 보여줘
윤이상, 차이콥스키 작품 등도 연주
지난 28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 이날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연주를 마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연신 눈물을 훔친 50대 중년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그럴 만한 연주였다. 2022년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 2024년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 2관왕(피아노 부문, 올해의 젊은 예술가 부문) 등 그간 쌓아 올린 탄탄한 커리어를 증명하듯, 임윤찬의 음악 세계는 놀랄 만큼 성숙해져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중후함과 맹렬함, 시리도록 아름다운 서정을 전면에 펼쳐내면서도 오케스트라의 흐름과 구조까지 아우르는 ‘21세 피아니스트’의 비범한 연주에 1000여 명 관중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일어나 환호성을 내질렀고, 그가 무대에서 사라지고도 박수 세례는 멈출 줄 몰랐다.
멀리서 들리던 ‘종소리’가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강렬한 도입부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향도 거뜬히 뚫고 나오는 명료한 타건,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은 압권이었다. 건반을 누르는 깊이와 무게, 페달 움직임, 피아노의 배음과 잔향의 효과를 아주 세밀하게 조율하면서 때론 반짝이는 윤슬 같은 신비로운 형상으로, 때론 묵직하면서도 뜨거운 화염의 움직임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피아노의 초고난도 기교가 쏟아지는 마지막 악장에서 임윤찬은 집중력과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무대를 완전히 장악해나갔다. 건반에서 손이 튀어 오른다고 느껴질 정도로 탄력이 강한 터치로 역동감을 불러냈고, 전체를 관통하는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도 날카로운 리듬과 예민한 기교 처리는 놓치지 않았다. 후반부에 피아노가 주도적으로 연주 속도를 높이며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구간에선 몸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세게 발을 구르면서 광활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가 불러낸 강한 응집력, 휘몰아치는 에너지는 쉬이 숨을 내쉴 수 없어 갈비뼈가 뻐근해질 정도의 압도적 경험을 선사했다. 긴 어둠의 터널을 걸어온 라흐마니노프가 마침내 마주한 ‘희열’ 그 자체였다.
‘아시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불리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첫 페이지를 화려하게 펼쳐낸 ‘젊은 거장’ 임윤찬. 그것만으로도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값진 무대였다.
통영=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