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다루는 이들의 손끝을 기록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리뷰

일상에서 마주하는 죽음들과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삶

유재철 장례지도사와 김새별 유품정리사
그리고 문인산 할머니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가 많지 않다고? 아마도 그 말은 집 앞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이 많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극장의 반경을 조금만 늘리면, 그럼에도 여전히 지근거리에 놀라운 영화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 한 편은 바로 다큐멘터리 <숨>이다. <숨>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행위를 통해 현재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숨>은 <파이터> (2021), <마담 B> (2018) 등의 작품으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종횡무진하는 윤재호 감독의 (장편 기준) 다섯 번째 작품이다. 장편 데뷔작인 <마담 B>는 탈북을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로 이 작품에서 윤재호 감독은 탈북자 브로커, ‘마담 B’와 함께 중국과 태국, 그리고 한국을 넘나드는 3년의 여정을 함께 해 관객으로부터 놀라움과 찬사를 동시에 받기도 했다.

<마담 B>가 그랬듯이, 이번 다큐멘터리 <숨>에서도 감독 윤재호는 쉽지 않은, 아니 오히려 정서적으로는 더 무겁고 도전적인 주제를 다룬다. 바로 ‘죽음’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다. 이번 다큐멘터리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장례지도사이자 염장, ‘유재철’ 선생이다. 유재철 장례지도사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의 장례와 염을 담당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는 그가 정성스럽게 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히는 과정을 기록한다. 그의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종류의 죽음이든, 시신은 작고 차갑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장을 거치는 육체의 경우, 남겨지는 한 줌의 뼛가루는 더더욱 그러한 생(生)의 미미함을 깨닫게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는 시신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유재철 장례지도사의 일상뿐만 아니라 생전의 삶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 김새별의 충격적인 하루를 통해 또 다른 죽음의 형태를 이야기한다. 김새별 유품정리사는 고독사로 사망한 한 남자의 집에 도착한다. 남자는 죽은 지 3개월이나 지나 발견되었다. 욕실에서 나오다가 넘어진 듯한 남자는 생전에 한 번도 외출하지 않았던 것처럼 쓰레기 더미와 술병이 가득한 집에서 자신의 죽음을 감추듯, 조용히 사망했다. 바닥에 눌어붙은 피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그가 생전에 특허 기술을 개발하고 등록했던 유망한 기술자였다는 사실이다. 과연 죽음은 삶의 정직한 반영이 아닌 것인가.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끝으로 영화는 유재철 장례지도사와 김새별 유품정리사 외의 또 하나의 주요 인물, 문인산 할머니의 일상을 병치한다. 언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고령의 그녀는 폐지를 줍고, 지친 몸을 바닥에 누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는, 혹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죽음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초연하고 담담하다. 화려한 생을 한 번 살아봤고, 비록 그것을 유지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녀는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굳센 싱글 여성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아이러니하지만 <숨>은 죽음을 통해, 그리고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유재철 장례지도사, 김새별 유품정리사, 문인산 할머니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죽음을 경시하지 않으면서도 두려워하거나 대단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삶보다 더 중요한 존재나 행위가 아닌 것이다.

<숨>에서 보여지는 죽음들(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죽음들)은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을 위해서가 아닌, 삶을 위해 산다. 죽음은 삶을 위해 살다 보면 어느 날 맞이하게 되는 문장 부호 – 그것이 마침표이든 느낌표이든, 말줄임표이든 – 이자, 누군가의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기표에 가깝다.
다큐멘터리 영화 '숨'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숨>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퍼붓는 누군가의 성대한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 소란한 장례 속에서 늘 그렇듯,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서 경건히 의식을 치르고 땀을 닦는 유재철 장례지도사의 담담한 표정은 앞에 놓인 우리의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과연 <숨>은 영화의 짧은 러닝 타임인 72분에 끝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관객은 그 몇 배의 시간 동안 생각과 상념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관련 예고 영상]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