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합법 거주 외국인에도 적대감

박신영 뉴욕 특파원
“저 한 달 반 뒤에 브라질로 돌아갑니다. 그 전에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하세요.”

지난해 말부터 필요할 때마다 파트타임으로 아이들을 돌봐주던 브라질계 미국인 크리스티나는 최근 만난 자리에서 이처럼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크게 부족함이 없지만, 대학생 딸이 미국 생활을 너무 힘들어한다고 설명했다.

이유 중 하나는 최근 이민자에 대해 험악해진 미국 사회의 분위기라고 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중남미계로 보이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단속하고 있다. 크리스티나의 딸처럼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이라도 불법 이민자로 의심받아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 때문이다.

무너지는 아메리칸 드림

미국 사회에선 불법 이민자뿐 아니라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도 감지되고 있다. 영주권이나 취업비자가 있는 거주자조차 여행 갈 때 여권 등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갖고 다닐 정도다. 최근 뉴욕·뉴저지 한인 커뮤니티에도 해외여행을 갈 때 여권과 비자 정보, 체류 만기 시점 등을 다시 한번 챙겨야 한다는 공지가 돌았다. 해외여행을 나갔다가 입국이 거부되거나 지연된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각 대학의 서류 미비 학생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연구기관의 인종·성별 등과 관련한 다양성 정책을 반대하며 보조금 삭감에 나섰다. 미 공화당 하원의원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자신에게 질문한 영국 스카이뉴스 기자 마사 켈너에게 “당신 의견이나 보도 따위는 신경 안 쓴다. 당신은 (불법 이민자로 인한) 당신 나라 국경이나 걱정하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이런 분위기는 불법 이민자가 미국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일자리마저 잠식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미국의 성공 방정식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미국에서 혁신적인 기업과 제품이 끊임없이 쏟아질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에서 인재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엔지니어 중 상당수는 인도와 중국 출신이다. 최근 수십 년간 미국 대학에 소속된 교수들이 노벨경제학상을 휩쓸었지만 이들 중에는 영국이나 핀란드, 튀르키예 등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학자가 많다.

이민자 단속, 美에 부메랑될 수도

이민자 덕분에 임금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저숙련 노동자 공급도 수월해진 측면이 있다. 이들은 농업, 건설, 식품가공, 청소, 요양 서비스 등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직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 서비스 부담을 높이고 치안 불안을 야기하는 불법 이민에 대한 단속은 필요하지만 합법 이민마저 적대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벌써부터 미국 각지의 건설 현장이 히스패닉 노동자들의 결근으로 작업을 멈추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 리버티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발밑에는 ‘지치고 가난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자들을 내게로 보내주소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미국 사회의 한 축을 이루는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이 무너질 때, 미국이 계속해서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