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SMR 시대…원자력 산업 판이 바뀐다

공장서 찍어내는 원자로 등장
바지선에 실어 현장으로 운송

공기 단축·비용 절감 효과 커
전력수요 변화에 신속 대응 가능

패러다임 변화 맞춰 정책 바꿔야
원자로 확보 중심의 전략 필요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탈원전 국가들의 문제점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대량의 경제적인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가 에너지 정책과 전력수급계획은 급변하는 에너지 환경과 기술 발전 속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자력 발전 기술은 지금 혁명적인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존의 대규모 고정식 원전 건설에서 벗어나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로의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SMR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 건설이 아니라 공장에서 원자로를 제작해 현장으로 운송 및 설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원자력 조선소에서 제작한 바지선에 탑재한 원자로를 이동시켜 즉시 전력을 공급하는 혁신적인 방식도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마치 자동차산업과 유사한 생산 및 공급 방식을 원자력산업에 도입하는 것과 같다. 이는 원자력 발전의 패러다임을 ‘전력 수급’ 중심에서 ‘원자로 생산’ 중심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같은 전환은 여러 가지 중요한 장점을 제공한다. 먼저 SMR은 전력 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원자로 출력 제어가 기존 원전보다 더 신속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모듈 수를 변화시킬 수 있어 전력 공급의 유연성이 크게 향상된다. 이는 기존 경직된 전력수급계획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또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비용을 절감하고 건설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경제성도 크게 개선된다. 이는 전기요금 안정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이에 더해 SMR은 단순한 전력 생산을 넘어 수소 생산, 해수 담수화, 지역난방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쓰여 원자력 에너지 활용 범위를 크게 확대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 측면에서도 SMR은 큰 기회를 제공한다. 표준화한 SMR 모듈을 전 세계 시장에 수출해 국내 원자력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원전이 이끄는 1세대 원자력 한류를 SMR이 이끄는 2세대 한류로 이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에 발맞춰 정부의 원자력 정책도 혁신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기존 ‘수요 예측 후 건설’ 방식에서 ‘충분한 생산 능력 확보 후 수요 대응’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유연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수 있으며, 신산업 육성과 국제 경쟁력 강화도 가능해진다. 인공지능(AI) 등 미래 전력 신규 수요와 화석연료의 무탄소 전환 수요를 고려하면 2050년까지 원자력을 세 배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아무리 많은 원자로를 생산해도 부족할 것이다. 전력 공급 부족으로 인한 산업 경쟁력 상실과 기술 발전 지체의 위험은 과잉 공급으로 인한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정치에 휘둘리는 기존의 경직된 전력수급계획에서 벗어나 정치를 초월한 미래 지향적이고 유연한 원자력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SMR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원자력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미래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함과 동시에 글로벌 원자력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로 생산’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원자력산업을 더욱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유연한 에너지원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제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각으로 원자력의 가능성을 재평가하고, 이를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할 때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더 안전하고, 깨끗하며, 지속 가능한 에너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