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동자에 춤을 청합니다...탱고의 시작점 까베세오

[arte] 이단비의 퍼스트 탱고

눈빛이 오가지 않으면 탱고는 시작되지 않는다

눈빛으로 춤을 청하고 응하는 과정
'까베세오(cabeceo)'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16세기에 쓰였지만 지금까지도 예술 안에서 수많은 옷을 갈아입으며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장르의 작품이든 누구나 기억에 남는 로미오와 줄리엣 하나쯤은 있을 법하다. 1978년, 영화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 1951~2024)는 영원한 줄리엣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 1891~1953)의 발레 음악에 맞춰 춤을 춘 알렉산드라 페리(Alessandra Ferri, 1963~)가 잊히지 않는 줄리엣이다. 로미오로는 바즈 루어만이 감독한 1996년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1974~)가 주목받았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로미오가 캐플릿가의 무도회에 몰래 숨어 들어갔다가 줄리엣과 마주쳐 첫눈에 반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수족관을 사이에 두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는 신비로운 연출을 끌어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그렇다. 캐플릿가의 무도회장에서 마주친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사람의 시간만 정지한 듯, 웅장한 음악과 군무 사이로 서로를 한참 동안 응시하며 서 있다. 이 장면을 본 사람은 누구나 말 한마디 없이도 오로지 눈빛만으로 그 둘이 서로 반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바즈 루어만의 &lt;로미오와 줄리엣&gt;.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로미오 역을 맡았다. / 사진출처. IMDb
바즈 루어만의 &lt;로미오와 줄리엣&gt;.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로미오 역을 맡았다. / 사진출처. IMDb
발레 &lt;로미오와 줄리엣&gt;, 줄리엣 역의 알레산드라 페리와 로미오 역의 웨인 이글링. / 사진출처. ©American Ballet Theatre
발레 &lt;로미오와 줄리엣&gt;, 줄리엣 역의 알레산드라 페리와 로미오 역의 웨인 이글링. / 사진출처. ©American Ballet Theatre
탱고에서도 눈빛이 말보다 강한 순간이 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 눈빛의 교환이 없으면 춤 자체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탱고를 추기 위해 모이는 곳을 밀롱가(milonga)라고 하는데 이 밀롱가에서는 말 대신 눈빛으로 춤을 신청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그것을 ‘까베세오(cabeceo)’라고 부른다. 까베세오는 스페인어로 꾸벅거림, 흔들림을 뜻하는 단어로 머리의 고갯짓, 도리짓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까베세오는 춤을 추고 싶은 상대방에게 눈빛을 보낸 후 고갯짓을 해서 춤을 청하고, 상대방이 그 춤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하는 과정을 말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과정을 세밀하게 구분해서 춤을 추고 싶은 상대를 향해 눈빛을 보내는 단계는 ‘미라다(mirada)’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까베세오라는 말 하나로 통칭된다.

눈빛으로 누군가를 춤에 초대한다니 상당히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처음에는 까베세오를 하는 게 무척 곤욕스럽다. 특히 같이 탱고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 ‘낭만적 눈빛’을 건넨다는 자체가 영 어색하다. 그래서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냥 같이 춤을 추자고 말을 걸거나 손을 내미는 게 훨씬 쉬워 보이는데 의외로 효율성 측면에서 까베세오가 월등하다. 우선, 멀리 있는 사람에게 걸어가지 않고 눈빛으로 춤 신청을 할 수 있고, 설사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려 거절하더라도 덜 민망하다. 직접 다가가서 춤을 신청했는데 상대가 싫다고 단칼에 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quot;춤 출래요?&quot;, &quot;오, 마이 갓! 노 땡큐&quot; 눈빛으로 까베세오 하지 않고 말로 춤을 신청해서 여성이 당황하는 모습을 풍자한 사진. / 사진. ⓒTangoGaraj
첫 밀롱가 나들이 때를 떠올려보면 까베세오 하는 게 남사스러워서 도통 춤을 출 수가 없었다. 동기들과 의기투합해서 낯선 밀롱가에 춤 좀 추자고 의기를 다지며 가더라도 고수들의 눈빛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정작 단 한 곡도 못 추고 나오기 일쑤였다. 용기를 내서 까베세오를 했지만 거절당한 남자 동기는 다시 까베세오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 까베세오의 문을 넘지 못해서 밀롱가에 발길을 끊고 탱고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까베세오는 용기에 용기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런데 까베세오에 대해 냉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다. 까베세오를 주고받은 그 파트너와 총 3~4곡의 춤을 춰야 하기 때문이다. 3~4곡이 한 세트이다. 한 곡 당 4~5분 정도이니 한 번 춤을 추기 시작하면 15~20분 동안 그 상대방과 춤을 춰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춤을 신청하고 받을 수밖에 없다. 춤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그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지옥의 맛일 테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밀롱가. / 사진. ©ripioturismo
눈빛을 오해해서 참사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춤 신청을 한 줄 알고 상대방이 다가올 때 냅다 일어났는데 알고 보니 옆 사람과 까베세오가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상대방에 바로 앞에 올 때까지는 ‘오해했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일어나지 않고 기다리라고 한다. 아뿔싸, 이미 일어나버렸는데 어쩌랴. 탱고 선배들은 그럴 때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위장(?)해서 화장실로 향하면 된다는 유용한 정보를 알려준다. 이럴 경우 세 사람 모두 민망함에서 비껴갈 수 있다. 밀롱가에서는 핸드폰을 보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지금은 춤을 추지 않고 쉬겠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다. 낯선 밀롱가에 갔을 때 까베세오가 편하지 않고 춤에 자신이 없어서 선뜻 플로어로 나가지 못하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게 되는 상황은 종종 벌어진다. 계속 춤을 추지 않고 있으면, 아르헨티나 현지 밀롱가에서는 밀롱가의 매니저(오거나이저)가 까베세오가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구석 자리로 밀어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탱고를 추고자 하는 사람에게 까베세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겠다는 뜻인 것이다.

그럼 까베세오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 기원을 찾다 보면 공통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스페인령 남미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행동이 제한돼 낯선 남성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특히 1940년대에는 탱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중산층의 여성들이 밀롱가에 오기 시작했는데 이때 여성들은 보호자나 가족과 함께 밀롱가에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낯선 남성이 여성에게 직접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게 쉽지 않았다. 눈빛으로 춤을 신청하는 것은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지 않으면서 서로 간의 위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즉, 까베세오는 춤을 출 수 있게 만드는 통로였다. 남성이 눈빛으로 춤을 신청하면 여성이 그것을 수락 혹은 거절하는 형태로 까베세오가 이뤄지지만, 미라다를 통해 여성도 춤추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도 마냥 수동적인 건 아니다. 최근에는 성별의 역할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고, 남녀 모두 미라다와 까베세오를 할 수 있다.

까베세오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카를 베버(Carl Weber, 1786~1826)가 작곡한 <무도에의 권유>가 될 것이다. 이 곡은 무도회장에서 한 신사가 처음 보는 숙녀에게 함께 춤추자고 청하고, 부끄러워하던 숙녀가 결국 춤 신청을 받아들이고 함께 춤을 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 신사가 춤을 신청할 때는 부드럽게 곡이 시작되고,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동안은 화려하게 전개되다가, 두 사람의 춤이 끝나고 서로 인사하는 부분에서는 다시 조용하게 마무리된다. 평생 동안 다리를 절어서 아내와 춤을 출 수 없었던 베버가 이 곡을 아내에게 선물함으로써 함께 춤추고 싶은 마음을 고백했다. 저서를 쓰면서 이 곡명을 책 제목의 일부로 가져온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춤에 초대하는 그 사연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베버의 이 음악은 1911년 파리에서 초연된 발레 뤼스의 작품 <장미의 정령>에도 등장한다. 이 작품은 무도회장의 모습이 아니라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돌아온 여성이 그 춤과 여운에 취해 잠이 들고 꿈속에서 장미의 정령을 만나 황홀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미의 정령은 춤의 정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레 &lt;장미의 정령&gt;에서 빅토르 레베데프와 율리아 스테파노바. / 사진. ©Mikhailovsky Theatre
밀롱가는 매일 춤의 정령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무도회장에서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말소리보다 눈빛을 주고받는 에너지가 가득 담긴 곳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안에서 줄리엣이란 단어는 180번, 로미오라는 단어는 308번 등장한다고 한다. 2010년 한 디자인그룹에서 이 연인의 이름을 5만5440개의 붉은색 선으로 이어 포스터를 만들어서 유러피안 디자인 어워드에 출품했다. 포스터 안에서 인연의 붉은 실이 그 두 사람을 이어 거대한 별이 되어 번지고 있다. 그 모습이 내게는 마치 밀롱가에서 탱고에 대한 열망을 담아 까베세오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이은 것처럼 보였다.
Beetroot Design Group이 로미오와 줄리엣 이름을 붉은 선으로 이어서 디자인한 포스터. / 사진. ⓒBeetroot Design Group
춤을 배운다는 건 종종 움직임이 아니라 문화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누군가 눈빛이 아니라 손이나 말로 춤을 신청하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다소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니 나도 탱고에 슬슬 젖어 들고 있구나 싶다. 까베세오는 일종의 초대장이다. 초대받은 사람에게는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거절당한 사람에게는 민망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되기도 하다. 그래서 까베세오는 춤을 향한 두 사람의 예의이자 존중의 표시이다. 눈빛이 오가지 않으면 탱고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당신의 눈동자에 까베세오를. 나와 함께 춤을 추시겠습니까?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