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일컬은 4월 2일을 앞두고 전 세계의 긴장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상호 관세에 산업별 관세, 국가별 관세, 보복 관세, 그리고 2차 관세까지, 이미 부과한 것에 더해 추가로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것까지 열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가) 매우 공정하고 관대할 것"이라면서도 "모든 국가를 상대로 예외 없이 부과할 예정"이라고 했는데요. 사실상 '보편 관세'에 수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커진 이유입니다.
끝이 없어 보이는 불확실성과 예상보다 더 공격적인 관세 우려에 미국 증시는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31일(현지시간) S&P500 지수는 한때 1.65% 급락했다가 0.55% 오른 5,611.85에 장을 마쳤습니다. 투자자들은 올라도 왜 올랐는지 이유를 찾느라 불안한 모습입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한경DB 나침반을 찾기 어려운 시장에서 월가는 수년째 현금을 비축해온 '투자의 전설'들에 새삼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과 '홍콩의 수퍼맨' 리카싱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리카싱 CK허친스홀딩스 회장. 자료=청쿵그룹 특히 리카싱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시아의 버핏'이라고도 불리는 리카싱은 중국 출신이지만 홍콩에 자리를 잡고 홍콩 최대 기업집단인 칭쿵그룹을 창업한 기업가입니다. 칭쿵그룹 지주사인 CK허치슨홀딩스 외에도 줌, 세노버스에너지 등 세계 여러 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리카싱은 재산이 304억 달러에 이르는 홍콩 최대 부호입니다. 특히 닷컴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1999년 영국 모바일 통신사 '오렌지' 지배 지분을, 홍콩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고점을 찍기 직전이었던 2017년엔 홍콩 내 초고층 빌딩을 팔았습니다. 위기가 오고 난 뒤에나 알 수 있었던 '신묘한' 매도 타이밍이었습니다.
이 CK허치슨과 리카싱이 최근 월가에서 다시 주목받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주장하면서부터입니다. 파나마운하 항구 두 곳의 운영권을 CK허치슨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CK허치슨은 이달 초 블랙록이 주도하는 미국 컨소시엄에 파나마운하 항구 운영회사 지분 90%을 넘기기로 했다가 중국 정부의 제동에 걸린 상태인데요. 올해 96세의 리카싱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인데도 이번 매각 협상엔 직접 참여하며 성사 의지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월가에선 리카싱이 이렇게 신속하게 항구 운영권을 넘기기로 한 배경이 무엇일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CK허치슨이 이번 거래에서 매각하기로 한 것은 파나마 운하 소재 항구 두 개뿐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홍콩과 중국 본토를 제외한 모든 항만 사업을 팔기로 했죠.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으로 인한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넘기는 것이라기엔 매각 범위가 크다는 겁니다.
회사 측은 수익성 때문이라고 했지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회사 항만 사업의 지난해 영업이익(EBIT)은 전년 대비 24% 늘었고 자동화에 따른 수익성 개선도 기대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항만 자산을 대폭 정리하려는 움직임은 더 큰 위기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관세 전쟁으로 글로벌 무역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와중입니다. 리카싱이 트럼프발(發) 무역 전쟁으로 전 세계 경기 둔화와 항만업 침체를 내다본 게 아니냐는 걱정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총 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 자료=블룸버그 이미 막대한 현금 보유량으로 주목을 받은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10개 분기 연속 현금 비중을 늘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3,342억 달러(약 493조원), 전체 자산의 29%에 달합니다. 물론 버핏이 올해 95세를 앞둔 만큼 기업 승계를 위한 포트폴리오 정리 작업의 일환이란 해석도 타당합니다. 하지만 버크셔가 최근 버핏의 전략에 따라 일본 종합상사 다섯 곳에 대해선 투자를 확대한 것을 보면 그런 해석은 그림의 전부가 아닐 수 있습니다. 닷컴버블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에 앞서 현금 비중을 늘렸던 버핏의 전적을 보면 이번에도 어떤 위기의 전조를 본 게 아니냐는 겁니다.
월가에선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진행될 것이란 분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실효관세율 상승폭에 대한 기본 전망을 기존 3.5%포인트에서 5.3%포인트로 상향했습니다. 현재 2.4% 수준인 미국 실효관세율이 7.7%까지 오를 것이란 분석입니다.
골드만삭스는 더 보수적입니다. 기존 예상(10%p포인트)보다 더 공격적인 상호 관세가 도입될 위험이 커졌다면서 올해 미국 평균 관세율이 15%포인트 인상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인플레이션은 더 높아지고, 경제 성장률은 더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미국 기업 이익 성장률과 주가 상승폭도 대폭 낮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단순 협상 수단이 아닌, 세수 확보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무기로 쓴다면 이런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전후 80년 간 미국의 주도 아래 구축된 세계 자유무역 질서가 재편된다면 시장은 그 이상의 변동성도 각오해야 할 수 있습니다. 리카싱과 버핏은 이런 상황도 내다본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