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공원의 소음마저 음악... 마룻바닥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하콘'

[arte] 뚜벅이 클덕 권혜린의 작은 공연장 탐방기

더하우스콘서트의 공연이 열리는
서울 대학로의 '예술가의집'

마룻바닥에 앉아 연주자 코앞에서 듣는 음악

50평형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4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무대 오르기도
쉬고 왔지만, 더 피곤한 날. 직장인에게 월요일은 그런 날이다. 새로운 한 주를 잘 시작하고 닷새를 또 잘 버티기 위해 더 긴장하고 더 분주하게 보내기 마련인 날. 그런데 그런 월요일이라도 ‘이곳’에 가는 날이라면 왠지 온종일 기분이 좋다.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까,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기대하게 되는 곳. 바로 매주 월요일 저녁 열리는 '더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다.

2002년 7월 작곡가 박창수의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해 그 역사가 23년이 되어가는 하콘. 어느덧 1000회를 훌쩍 넘긴 하콘은 11년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매주 열리고 있다. (바로 여기 아르떼에서 강선애 대표의 칼럼 [스무살 하콘 기획자 노트]를 통해 하콘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거 아시죠?)

그 오랜 역사에 비해 내가 하콘에 발을 들인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나로 하여금 ‘작은 공연장’이라는 콘셉트로 칼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결정적인 한 방이 하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하콘은 공연장의 이름이 아닌 공연 자체의 이름이지만 이 칼럼에서는 공간적인 의미를 담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과 방송통신대학교 사이에 붉은 벽돌 건물 ‘예술가의집’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돌출된 아치형 입구와 큰 창이 아름다운 이 건물은 1931년에 지어져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관을 거쳐 2010년 ‘예술가의집’으로 재탄생했다. 하콘과 같은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예술가들이 창작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쓰이는 그야말로 예술가의 집이다.

이 건물 3층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하콘이 열리는데 그곳의 이름은 사실 ‘다목적홀’이다. 클래식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낮 공연이 있는 날에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버스킹 하는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지만 그 또한 하콘의 일부라고나 할까?
예술가의집을 찾는 관객들. /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예술가의집을 찾는 관객들. /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하콘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방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즐긴다는 점일 것이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좌식 의자가 무대를 향해 가지런히 놓여있다. 객석 수는 공연마다 다른데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적게는 40명 내외, 많게는 100명 이상의 관객이 함께한다. 홀에 들어가면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발을 뻗든 양반다리를 하든 편한 자세로 즐기면 된다. 아, 맨 앞줄에 앉을 경우 공연의 형태에 따라 연주자와의 거리가 50cm도 되지 않을 만큼 무대와 객석이 가까우니 너무 놀라지 말 것! 나도 처음 하콘에 왔을 때는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면서도 솔직히 조금은 불편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고 즐기게 되었다.

하콘이 열리는 이곳은 정말로 ‘작은 공연장’인 동시에 ‘큰 공연장’인 이상한(?) 곳이다. 50평형(162㎡)이 채 되지 않는 이 공간에서 가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하콘을 찾은 그날도 그랬다. <2025 아티스트 시리즈 1. 클래식 색소폰의 콘체르토> 공연이 열린 3월 10일.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와 WE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날이었다. 대규모 편성은 아니지만 15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지휘자, 솔리스트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한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무대는 꽉 찼고, 관객도 적지 않은데다 녹화 중계를 위한 방송국 촬영팀 스태프와 장비까지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이쯤 되면 ‘작은 공연장’이라고 하는 게 좀 머쓱해지는데 사실 하콘의 전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40명의 연주자가 총출동하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협주도 있었고(*2024년 줄라이 페스티벌 오프닝), 40명의 합창단과 피아노, 오르간 등 연주자들이 함께 한 공연도 있었으며(*2024년 9월 번개 콘서트), 48명의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등장한 공연도 있었으니(*2024년 12월 CML 페스티벌 앙상블 공연) 이 작은 공연장에는 어쩌면 내가 모르는 비밀 공간이 있어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해보게 되는 것이다.
지난 3월 더하우스콘서트의 올해 상주음악가인 브랜든 최의 공연이 열렸다. / 사진. ⓒ권혜린
어쨌거나 ‘작지만, 결코 작지 않았던’ 그날, 올해 하콘의 상주음악가인 브랜든 최는 글라주노프와 이베르, 드뷔시와 웨이그네인 등 자주 접하기 어려운 색소폰 협주곡 네 곡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목관악기의 따뜻함과 금관악기의 웅장함을 모두 가진 클래식 색소폰의 음색은 독특했다. 매끈하고 균일하기보다는 연주자의 날숨대로 소리의 모양과 색깔, 질감이 달라지는 것이 원초적이면서도 세련되고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이었다. 클래식 색소폰과 재즈 색소폰은 엄연히 다르지만, 클래식 색소폰의 선율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재즈의 바이브가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오케스트라와 유연하게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방바닥을 타고 온몸에 전해지는 진한 울림에 두둠칫 리듬을 타고 싶어지기도 했다.

네 곡의 화려한 협주곡을 지나 앙코르는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연주자의 당부대로 연주가 끝나고도 모두가 숨죽이며 잠시 그 여운을 지켰다. 아름다운 음악과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작은 공연장을 온기로 가득 채웠다. 난생처음 클래식 색소폰 연주를 본 날이었지만, 하콘의 촘촘한 밀도 덕분에 낯선 악기와 친해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연이 끝난 뒤 옆에 앉은 분이 말을 걸어왔다. 혼자 오셨느냐, 연주회는 혼자 다녀도 좋다, 오늘 공연 재미있었다, 옛날 연희동 시절에도 좋았는데 여기도 좋다... 등등. 연륜이 깊은 하콘 팬인 그분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방바닥에 앉아 처음 본 관객과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역시 하콘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더하우스콘서트에서는 관객과 연주자의 거리가 50cm도 되지 않을 만큼 가깝다. 방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매력. /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하콘에서는 올해도 여러 장르, 여러 연주자의 풍성한 무대를 만날 수 있다. 상주음악가 브랜든 최의 공연이 6월과 9월, 12월에 예정되어 있고, 7월 한 달은 스트라빈스키와 20세기 작곡가들을 주제로 수많은 연주자가 매일 무대를 선보이는 ‘줄라이 페스티벌’이 열린다. 물론 매주 월요일 공연도 계속된다.

물리적으로는 작은 공간이지만 하콘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음악의 세계는 끝없이 넓다. 혹시 월요병으로 지쳐있다면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하콘에서 낯설지만 새롭고, 작지만 특별한 즐거움으로 에너지를 충전해보면 어떨까?

권혜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