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주식 비중 '70% 룰' 넘는다…채권혼합형 ETF에 뭉칫돈

채권혼합형 ETF 순자산 6배 ↑
자산운용사 연금시장 선점 경쟁
ETF 종류도 35개 → 48개로 늘어

주식 비중 높을수록 성과 우수
채권혼합형 담으면 최대 85%
TDF 담으면 94%까지 가능
Getty Images Bank
퇴직연금 계좌에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혼합형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연금계좌의 위험자산 70% 한도를 넘어 주식 비중을 극대화하려는 투자자가 몰리면서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ETF 출시 경쟁이 이어지자 관련 상품군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 순자산 6배로 불어나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채권혼합형 ETF의 순자산총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3조5694억원에 달했다. 2022년 말(5534억원)과 비교해 2년3개월여 만에 순자산이 약 여섯 배로 불어났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올해 들어서만 순자산이 8284억원 불어났다. 상장된 채권혼합형 ETF도 2022년 35개에서 이날 기준 48개로 늘었다.

채권혼합형 ETF에 뭉칫돈이 몰린 것은 퇴직연금 계좌에서 주식 비중을 극대화하려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퇴직연금 계좌에서 주식형 펀드 등 위험자산을 적립금의 70% 한도까지만 투자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나머지 30%는 예·적금과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한다.
안전자산 30% 몫에 채권혼합형 ETF를 담으면 위험자산 70%의 벽을 넘을 수 있다. 주식과 채권을 일정 비율로 담은 채권혼합형 ETF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이를 안전자산 30% 한도에서 투자하면 주식 비중이 극대화되는 효과를 본다. 단일종목 채권혼합 ETF는 주식 비중이 최고 30%다. 테슬라 30%, 국고채 70% 비중으로 투자하는 ‘TIGER 테슬라채권혼합Fn’은 순자산이 4338억원으로 채권혼합형 ETF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지수형 채권혼합 ETF는 주식을 최대 50% 담을 수 있다. 2023년 말 규제가 완화돼 최고 주식 비중이 기존 40%에서 50%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SOL 미국배당미국채혼합50’과 이날 출시된 ‘TIMEFOLIO 미국나스닥100채권혼합50액티브’ 등이 주식을 약 50% 담고 있다. 위험자산 70% 한도에 주식형 펀드를 편입하고 남은 안전자산 30% 한도에 이 ETF들을 담으면 연금계좌에서 전체 주식 비중이 최대 85%로 높아진다.

◇ ‘1000조원 시장’ 노리는 운용사들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른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자산운용사들은 채권혼합형 ETF 출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퇴직연금 시장은 현재 432조원에서 연평균 약 9.2% 커져 2034년 1042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안전자산 30% 한도에서 투자 가능한 채권혼합형 ETF 시장 규모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은퇴 시기에 맞게 자산을 배분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 ETF가 운용사들의 격전지로 부상했다. ‘적격 TDF’는 주식 비중을 80%까지 확대해도 퇴직연금에서 100% 한도로 투자할 수 있게끔 당국이 허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70%는 주식형 펀드, 나머지 30%는 주식 비중이 높은 TDF로 채우면 퇴직연금의 주식 비중을 최대 94%로 높일 수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달 25일 미국 S&P500지수에 집중 투자하는 ‘TIGER TDF2045’를 상장했다. 세계 첫 패시브형 TDF ETF로, S&P500(79%)과 국내 단기채(21%)에 투자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TDF2030액티브’ ‘ACE TDF2050액티브’ 등을 상장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퇴직연금 내 주식 비중을 높이면서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게 미국 등 선진국의 공통적인 정책 흐름”이라며 “통계적으로 봤을 때 주식 비중이 높을수록 장기 성과가 우월했다”고 설명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