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범죄자들 몰리더니…캄보디아서 대박 난 사업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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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 거부감에 한식 도시락 선호
한국인 범죄자 1000명 수요에
한식당들 "홀 영업 접고 배달 전환"
'도시락 브로커'까지 등장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내 중국계 사기 범죄 조직에서 일하는 20대 A씨는 최근 달라진 점심 식사 풍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캄보디아 내에서 '한국식 도시락'이 각광받는 사업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등을 저지르는 한국인 사기꾼들이 돈벌이를 위해 캄보디아로 몰려들면서 현지 한인 자영업자들이 한식 도시락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범죄자들이 단체로 숙식하는 이른바 '범죄단지'에 대량의 한식 도시락을 납품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한국인 범죄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한 도시락 판매를 통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며 현지에서 'K푸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2일 캄보디아 교민들에 따르면 현지에서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는 한식당은 10여 곳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만 3곳이 늘었다. 시아누크빌의 H식당은 지난달 31일 "홀 영업을 중단하고 도시락 배달을 시작한다"고 공지했다. 시엠립에 위치한 S식당도 이달 1일부터 도시락 배달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캄보디아는 주식 리딩방, 보이스피싱 등 한국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기 범죄의 신(新)거점으로 떠오른 동남아시아 국가다. 경찰청은 캄보디아 내 사기 범행에 연루된 한국인이 최소 1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한인들 사이에서는 범죄단지나 소규모 사기 사무실 등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2000~30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이같은 범죄 조직에서 일하는 한국인 사기범들은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 외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식사는 내부에서 제공되는 급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부분의 범죄단지는 중국인 조직이 운영하기 때문에 단체급식도 중국식으로 제공된다. 하지만 중식의 경우 기름지고 낯선 재료가 많아 한국인들에게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한식 도시락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업계의 설명이다.
B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죄자 네트워크를 통해 도시락 납품처를 확보하고, G식당은 요리를 전담하는 방식이다. 도시락은 개당 7.5달러에 공급되며, 이 중 1.5달러는 B씨 몫, 2달러는 식당 주인의 수익, 나머지 4달러는 재료비와 포장비 등 원가로 책정된다.
도시락 업체들은 주로 수도 프놈펜이 아닌 항구 도시 시아누크빌에 집중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재외국민 약 7800명 중 5000여 명은 프놈펜에, 700여 명은 시아누크빌에 거주하고 있다. 단순 인구 분포로 보면 프놈펜이 도시락 수요지로 보이지만, 실제 수요는 시아누크빌에서 더 많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마다 범죄단지가 분포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프놈펜은 경찰 단속이 비교적 강해 범죄 조직의 활동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시아누크빌은 카지노 산업이 활발하고 중국계 조직이 집중돼 있어 여전히 범죄단지가 밀집해 있다. 이들 조직 아래서 일하는 한국인 사기범도 많아 도시락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현지의 한 한인 상인은 "도덕적으로 떳떳한 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역시 캄보디아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생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