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만으론 부족한 바이오 강국의 조건…"식약 규제 장벽부터 넘자"[화우의 바이오헬스 인사이트]

식약당국, 신속심사 제도 보완 필요
혁신의료기기 가이드라인 시급
AI·디지털치료제 실증 기회 늘려야

"기술은 앞서는데 규제는 뒷걸음"
'혁신+안전'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세계적으로 바이오헬스산업이 혁신과 성장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백신, 진단키트, 치료제 개발 등 바이오헬스 분야의 중요성이 재확인되면서, 각국은 이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한국 역시 바이오 기술력, 제조 역량 및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바이오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식약당국의 규제를 포함한 정책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혁신과 신속한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국 바이오헬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식약당국은 어떤 방향으로 규제개혁을 해야 할까.

안전성과 혁신의 조화…"유연한 심사로 신기술 대응해야"

바이오헬스산업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규제 체계가 필수다. 동시에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와 시장 수요에 대응해 신기술이 적시에 개발·상용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간 식약당국은 엄격한 안전성 평가와 임상시험 절차를 통해 국민 건강을 보호해 왔으나, 빠르게 변화하는 바이오 기술 환경에 대한 제도적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따라서 규제 혁신은 ‘안전성 확보’와 ‘혁신성 촉진’을 균형 있게 조율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예컨대, 초기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바이오 스타트업에 과도한 서류·행정 절차를 요구하기보다는, 적정 수준의 데이터를 요구하고 단계별 승인 조건을 설정해 기술 가능성을 신속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기초·임상 데이터가 미비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으로 시장에 출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심 안전성 지표와 제품 품질 기준 등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철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글로벌 규제당국은 혁신 의약품·의료기기·디지털치료제 등을 대상으로 신속심사, 우선심사, 혁신제품 지정제도 등을 운영하며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예컨대, 미국 FDA의 경우, 혁신적인 치료 기술일수록 우선심사를 통해 승인 기간을 단축시키고, 심사 과정에서 기업과의 소통을 활성화해 불필요한 재검토를 최소화한다. 우리나라 식약처 역시 신속심사 및 조건부 허가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대상 범위, 심사 역량, 후속 관리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식약당국은 혁신성이 뚜렷한 기술을 조기에 포착하고 지원할 수 있는 선제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혁신 의료기기, 유전자치료제, 세포치료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치료 영역이 등장할 때마다, 기술 표준·품질 기준·임상시험 설계 방향 등을 사전에 제시하면, 기업과 연구자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융복합 시대, 규제 샌드박스로 실험 허용…전문성도 강화

바이오헬스 산업은 정보통신기술, 빅데이터, AI와의 융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스마트 임상시험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모니터링, 환자 맞춤형 디지털 치료제, 인공지능(AI) 진단 시스템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러한 융복합 제품들은 기존의 의약품·의료기기 기준만으로는 허가·심사가 어려울 수 있다. 이 때 규제 샌드박스나 실증 특례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신기술이 조기에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를 운영할 때 국민 건강 및 안전과 관련된 잠재적 위험성을 충분히 모니터링하고, 유연한 규제를 적용받은 제품이 정식 허가 절차로 원활히 연계될 수 있도록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의 적극적 운영은 기업이 과도한 규제 리스크로 인해 혁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안전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데이터 축적을 촉진할 수 있다.

규제개혁은 단순히 법·제도의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실행하고 운영하는 전문 인력의 역량과 조직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식약당국은 바이오 기술 및 최신 규제 트렌드에 대한 이해도를 갖춘 심사 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채용·육성해야 한다. 산업계와 학계, 연구기관과의 협력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아울러 조직 문화 역시 ‘관 주도’가 아닌 ‘민관 상호협력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기술 개발 과정 초기 단계부터 기업·연구기관과 소통하며 잠재적 규제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규제기관 간 협의체를 구축해 규제 혼선을 줄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정착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로 바이오강국 도약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와 탄탄한 제조업 기반,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규제 체계를 보다 신속하고 과학적으로 정비한다면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그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면서 ‘지속 가능하고 혁신적인’ 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균형점을 잘 잡아가는 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바이오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권동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 대법원 지식재산권조 재판연구관, 서울 고등법원 고법판사, 특허법원 제1호 고법판사를 역임했다. 오랜 재판실무경험을 통해 법적 분쟁의 공격방어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법률적으로 확실하게 뒷받침하여 승소를 이끌어내고 있다. 메디톡스를 대리하여 17전 16승의 전무후무한 실적을 거두는 등 국내 지식재산권 및 바이오헬스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