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전력 수요 폭증하는데…송전망 31곳 중 26곳이 '지각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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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21년 걸려 준공충남 당진시 송악읍과 아산시 탕정면을 잇는 41.3㎞ 송전선로는 천안·아산에 밀집한 첨단 생산기지에 ‘젖줄’이나 다름없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자, 코닝정밀소재 등이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젖줄을 통해 전기를 흘려보내는 데는 선로 사업 시작 후 꼬박 21년이 걸렸다. 주민 반발로 입지를 선정해 첫삽을 뜨는 데만 11년이 걸렸고, 그 이후에도 철새 영향, 서해대교 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거부해 준공 시기가 여섯 차례나 밀렸다. 지난해 12월 겨우 운영을 시작했지만 ‘국내 최장기 지연 사업’이라는 오명을 얻은 후였다.
한전 전력 구입비로 2.7조 손실
화력발전 대신 LNG 전기로 충당
천안·아산 첨단 투자도 가로막혀
다른 전력망 건설도 '안갯속'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
종점인 하남시 퇴짜로 '지지부진'
◇ 150개월 지연에 2.7조원 손실
한전의 손실은 고스란히 전기요금에 반영됐다. 특히 상대적으로 인상에 대한 저항이 적은 산업용 전기가 대상이 됐다. 한전은 2020년 12월 이후 산업용 전기료를 여덟 차례 올렸다. 이 기간 인상률은 70%를 훌쩍 웃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되는 동안 서해안의 저렴한 석탄화력 전기보다 수도권의 비싼 LNG 복합화력이 더 많이 가동돼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격히 인상된 측면이 크다”며 “㎾h당 전기료가 최대 20원 더 올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전선로 준공 지연은 첨단산업 투자도 가로막았다. 천안·아산 지역은 2023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됐지만 투자가 탄력을 받지 못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정상 가동을 계기로 이 지역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투자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 제 때 준공한 송전망 5곳 불과
문제는 이렇게 공사가 늦어진 송전선로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계획된 송전선로 사업 31개 중 정상적으로 준공된 사례는 현재까지 5건에 불과하다. 26개 송전선로가 지각 준공됐거나 아직 준공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처럼 60개월 이상 장기 지연된 사업도 5개에 이른다.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이 대표적이다. 이 송전선로는 동해안 지역의 값싼 석탄화력 및 원전 전기를 수도권까지 대량으로 끌어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송전선의 ‘종점’ 역할을 하는 경기 하남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공사가 걸림돌이 됐다. 작년 8월 하남시가 전자파 우려 등을 이유로 한전이 신청한 관련 인허가 4건을 불허하면서다. 같은 해 12월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하남시의 허가 거부 처분을 모두 취소했지만 주민 반발 등으로 지난달 31일에야 가까스로 공사가 재개됐다.
이 사업 역시 당초 2019년 12월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계속 늦어지면서 연간 3000억원의 추가 전력 구입비가 한전 장부에 손실로 쌓이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에도 걸림돌이다. 산업부는 용인 반도체메가클러스터가 준공되는 2038년 전력 수요가 지금보다 30% 이상 많은 128.9GW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발전소는 충분한데 송전망이 부족해 가동을 못 하는 발전소가 많다”며 “최대 화두는 송전망”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당진=김대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