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전력 수요 폭증하는데…송전망 31곳 중 26곳이 '지각 준공'

험난했던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21년 걸려 준공

한전 전력 구입비로 2.7조 손실
화력발전 대신 LNG 전기로 충당
천안·아산 첨단 투자도 가로막혀

다른 전력망 건설도 '안갯속'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
종점인 하남시 퇴짜로 '지지부진'
충남 당진시 송악읍과 아산시 탕정면을 잇는 41.3㎞ 송전선로는 천안·아산에 밀집한 첨단 생산기지에 ‘젖줄’이나 다름없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자, 코닝정밀소재 등이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젖줄을 통해 전기를 흘려보내는 데는 선로 사업 시작 후 꼬박 21년이 걸렸다. 주민 반발로 입지를 선정해 첫삽을 뜨는 데만 11년이 걸렸고, 그 이후에도 철새 영향, 서해대교 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거부해 준공 시기가 여섯 차례나 밀렸다. 지난해 12월 겨우 운영을 시작했지만 ‘국내 최장기 지연 사업’이라는 오명을 얻은 후였다.

◇ 150개월 지연에 2.7조원 손실

2일 충남 당진시에서 국내 최장기 지연 사업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준공식이 열렸다. 산업부 제공
2일 준공식을 한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아산 탕정의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단지로 보내기 위해 2003년부터 추진됐다. 당초 2012년 6월 준공될 예정이었다. 준공이 12년간 미뤄지면서 한국전력은 2조7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가 2016년 발전을 시작했는데, 송전선로가 없어 이 전기를 받지 못하고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전기로 충당하면서다. 한전 관계자는 “앞으로 연간 3500억원의 전력 추가 구입비를 줄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한전의 손실은 고스란히 전기요금에 반영됐다. 특히 상대적으로 인상에 대한 저항이 적은 산업용 전기가 대상이 됐다. 한전은 2020년 12월 이후 산업용 전기료를 여덟 차례 올렸다. 이 기간 인상률은 70%를 훌쩍 웃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되는 동안 서해안의 저렴한 석탄화력 전기보다 수도권의 비싼 LNG 복합화력이 더 많이 가동돼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격히 인상된 측면이 크다”며 “㎾h당 전기료가 최대 20원 더 올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전선로 준공 지연은 첨단산업 투자도 가로막았다. 천안·아산 지역은 2023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됐지만 투자가 탄력을 받지 못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정상 가동을 계기로 이 지역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투자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 제 때 준공한 송전망 5곳 불과

문제는 이렇게 공사가 늦어진 송전선로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계획된 송전선로 사업 31개 중 정상적으로 준공된 사례는 현재까지 5건에 불과하다. 26개 송전선로가 지각 준공됐거나 아직 준공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처럼 60개월 이상 장기 지연된 사업도 5개에 이른다.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이 대표적이다. 이 송전선로는 동해안 지역의 값싼 석탄화력 및 원전 전기를 수도권까지 대량으로 끌어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송전선의 ‘종점’ 역할을 하는 경기 하남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공사가 걸림돌이 됐다. 작년 8월 하남시가 전자파 우려 등을 이유로 한전이 신청한 관련 인허가 4건을 불허하면서다. 같은 해 12월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하남시의 허가 거부 처분을 모두 취소했지만 주민 반발 등으로 지난달 31일에야 가까스로 공사가 재개됐다.

이 사업 역시 당초 2019년 12월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계속 늦어지면서 연간 3000억원의 추가 전력 구입비가 한전 장부에 손실로 쌓이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에도 걸림돌이다. 산업부는 용인 반도체메가클러스터가 준공되는 2038년 전력 수요가 지금보다 30% 이상 많은 128.9GW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발전소는 충분한데 송전망이 부족해 가동을 못 하는 발전소가 많다”며 “최대 화두는 송전망”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당진=김대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