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파릇파릇하다" 성희롱 발언에도…국세청 직원 파면 취소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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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세청 직원, 성희롱 파면 취소 소송서 승소
"사랑의 속삭임, 홍조로 어려보여" 직접 발언 인정
외모 간접 언급·사적 접근은 제외…"파면은 과도"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11부(재판장 김준영 부장판사)는 전직 국세청 직원 A씨가 국세청장을 상대로 "파면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4년 세무서기보로 임용된 A씨는 2023년 10월 국세청에서 파면됐다. 그해 5월부터 동료들로부터 성희롱 고충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A씨는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파면이 의결됐고, 다음 해 1월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서도 소청심사가 기각됐다. A씨는 파면 결정에 불복해 작년 행정소송을 냈다.
쟁점은 A씨의 성희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였다. 양성평등기본법상 성희롱은 '근로자가 지위를 이용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규정된다. 국세청이 삼은 A씨 징계사유는 크게 성희롱 발언과 성희롱 행위로 나뉘었다.
A씨가 회사 내 피해 직원들에게 직접 발언했던 징계 사유는 법원에서 상당수 인정됐다. A씨는 13살 연하인 B씨에게 '사랑의 속삭임'·'감미로운 목소리'라 발언하는가 하면, 타 여직원들에게 "신규직원은 파릇파릇하다"라거나 "홍조가 있어 어려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A씨는 "남녀 간 육체적 관계나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나타내는 발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B씨와는 서로 직장 동료 이상의 관계가 아닌데다, 큰 소리로 발언해 사무실 직원들이 충격을 받고 당황한 점을 보면 일반적인 사람도 성적 굴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이라 했다. 또 "A씨가 '신규 직원들이 온다니 떨려서 잠을 못 잤다'고 한 점을 보면 여성 직원의 성적인 매력을 은유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A씨가 직원들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발언은 인정되지 않았다. A씨는 동료 남자 직원들에게 "모델 같다", "저희 서에 예쁜 여직원들이 많다", "늘씬하고 머리도 길어 좋다"고 언급했다. 법원은 위 발언에 대해 "남자 직원들이 A씨의 발언을 듣고 성적 굴욕감을 느끼지 않았고, 발언도 직접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A씨가 여직원들에게 추근댄 행위도 성희롱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A씨는 한 여직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기프티콘을 보내고 '함께 출장을 나가자'고 제안하거나, 여직원들이 탕비실에 가면 탕비실에 따라가 말을 걸기도 했다.
법원은 메신저 대화를 두고 "A씨가 대화를 시도해 만남을 제안한 것으로 사회 통념상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부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탕비실에서 적극적으로 신체적 접촉을 시도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다, 탕비실에 따라가거나 근처에 서 있었거나 말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A씨는 1심에서 파면이 과도하다는 차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A씨의 비위의 정도와 책임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해자가 다수이기는 하나 신체적 접촉이나 성적 표현이 심각한 수준의 비위에 해당하지 않고,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비위행위라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